내어주는 만큼 배우는 진리
삼위일체 하느님은 신적 생명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매력으로 끌어들였다. 선과 자비라는 매력에 이끌린 사람은 관계 속에 선을 행함으로써 신적 생명에 참여한다. 이 초대에 응답하는 사람은 완전한 자유 안에서 성장하고 관계를 확장함으로써 선을 반사하는 것이다.
현실의 본질은 언제나 관계성 안에 있다. 하느님과 너와 피조물 사이에서 선의 흔적을 발견하는 몫은 언제나 우리에게 달려있다. 깨달은 만큼 발견하고, 발견하는 만큼 경탄하게 되며 경탄하는 만큼 경이롭다. 이 놀라움 안에서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커지는 것이며 확신이 커질수록 자신을 내어주시는 하느님을 더욱더 닮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어 자신을 내어주는 일로 하느님의 무상성을 관계 안으로 옮긴다. 하느님의 거처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셋으로 시작하는 관계가 하느님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자신을 내어주면서도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조금도 손상하지 않는 관계의 혁명을 불러오는 신비를 거기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선의 놀라운 확장성이 상호작용하는 관계 안에서 생명의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안에서 밖으로 분출되는 이러한 신적 에너지가가 관계적 소속감과 상호참여를 지지해 줄 근거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완전히 내어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다. 비로소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빠져있을 때는 이 사실을 모른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인격에다 하느님의 신적 모상을 심어주시어 관계성 안에서 당신과 통교하듯이 다른 피조물과도 통교하게 하셨다. 그것이 관계성의 기초가 되었다. 우리는 거기서 하느님과 너와 피조물과의 소통을 배운다. 내어주는 만큼 배우는 진리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