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시기에 들어와 우리가 계속 읽는 요한복음 1장은 천지창조 이전부터 계셨던
말씀이 이 세상에 오신 얘기로 시작되는데 말씀이 세상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도 맞아들이지도 않았다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보내시어 주님을 증언하게 하는데
사람들은 요한이 바로 그 메시아 그리스도이신지 궁금하여 묻습니다.
그저께 복음에서 “당신은 누구요?”라고 묻자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답하고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재차 묻자,
요한은 다시 “아니다.”라고 답하고, 다시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어저께 복음에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주님을 보고,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요한은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증언하고,
오늘 복음에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똑같은 증언을 합니다.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러니까 세례자 요한은 이 세상에 탄생하시어 사람들 가운데 오신 주님을
사람들이 몰라보고 자기를 향하자 거듭 자기가 아니라 주님을 보라고 합니다.
“보라” 또 “보라”
이 두 번의 초대에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이 갈립니다.
본 사람이 제자들이고 보지 않은 사람은 제자가 아닙니다.
오늘 보고 주님을 따라간 사람은 주님의 제자가 되었고,
보지 않고 그래서 돌아선 사람은 제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보는 것은, 제자 되는 것의 시작, 곧 출발점입니다.
흘깃 보든 똑바로 보든 보는 것이 소위 관상이고,
관상이 제자 되는 것의 시작이요 출발점입니다.
그래도 제자가 되려면 제대로 보기 위해서 방향을 주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흘깃 보든, 곁눈질로 보든, 지나치며 보든, 정면으로 보지 않던 사람은
방향을 틀어 주님을 정면으로 봐야 하는데 이것이 두 번째 단계입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의 첫 제자들처럼 따라가야 합니다.
먼발치에서 또는 먼빛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되려면 가까이 다가가 또렷이 봐야 하고,
더 나아가 함께 살며 주님을 더 그리고 깊이 관찰해야 합니다.
관찰觀察, 이것이 관상의 더 깊은 단계이고,
이것이 어쩌면 클라라가 얘기하는 관상의 두 번째 단계
곧 “Considera”의 단계인지 모르겠습니다.
제자들은 관찰을 통해 통찰하게 되었을 것이고,
스승 세례자 요한의 증언대로 자기들이 기다리던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심증을 확실히 갖게 되었을 것이며,
그래서 다른 제자들도 데리고 가 주님의 제자가 되게 했을 겁니다.
스승 세례자 요한이 보라고 한 대로 봄으로써
그들은 세례자 요한의 제자에서 주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우리도 보라는 주님은 보지 않고 세례자 요한만 보고 돌아간
어리석은 사람처럼 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받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