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선포하였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가 메시아일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기보다 위대하신 분,
사람들이 기다리던 분이
곧 오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분에 비해 자신은 비천한 존재임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을 낮춥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기에 앞서
요한이 세상에 파견됩니다.
요한은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었지만
아니 자신이 의도적으로 행동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그를 우러러 보았음에도
요한은 자신을 낮춥니다.
인간적인 마음에서는
다른 사람이 나보다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것이 사실인데,
요한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행동이
굴욕적인 자기 비하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도 메시아가 필요한 존재임을 알았고
그래서 자신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겸손은 자기 인식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요한은 자신을 낮춘 것도 아니고
자기를 비하한 것도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표현한 것 뿐입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거부할지라도
그것에 흔들리지 않을
높은 자존감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요한을 메시아로 알고 그를 찾아왔던 사람들은
그가 메시아가 아님을 알았을 때
실망했을 것입니다.
물론 요한의 말을 듣고
다시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요한이 자신들을 속였다고
그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비난에도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님을 솔직히 이야기합니다.
요한도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람이었기에
그는 솔직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도 한갖 부족한 인간임을,
그 부족한 나를 위해서도
하느님께서 나에게 다가오심을,
알고 있었기에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그 사랑을 희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랑은 그를 솔직한 고백으로 이끕니다.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내 행동에 대해 자책하기 보다는
나를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더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랑으로 충만해질 때
우리도 천천히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