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공현 대축일에 동방박사들이 빛이신 주님을 찾아와 뵙기까지
그 배경이랄까 상황은 어두움이고 그러나 하늘에 별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오늘 이사야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동방박사들이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아직 주님을 뵙지 못한 사람들이고,
대신 어둠에 둘러싸여 어둠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빛을 포기하지 않고 찾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을 둘러싼 어둠은 어떤 어둠입니까?
첫째는 죄와 악의 어둠입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참으로 죄와 악이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선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암울합니다.
둘째는 고통의 어둠입니다.
먹고 사는 것도 힘들고,
인간관계도 힘들고,
육체적, 심리적, 정신적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닌데다
이 고통의 바다에서 헤어날 길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셋째는 알 수 없는 어둠입니다.
이 악하고 고통스러운 세상을 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어둠입니다.
한마디로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모르니 그 길도 모르는 어둠이요,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니 여기저기 방황하는 자의 어둠입니다.
이 모든 어둠이 합쳐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어둠 곧 절망의 어둠입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은 한동안 이 어둠 속에 주저앉아 있었을 겁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계속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세상에서 하늘로 시선을 돌리고 어둠에서 별을 보기 시작했을 겁니다.
세상에서 해법을 찾을 수 없어 하늘에서 해법을 찾으려고 한 것인데,
그렇게 하늘을 보니 비로소 하늘에 별이 떠 있는 것이 보인 것입니다.
이것이 참 희망의 진실입니다.
밤이 돼야 별이 뜨고 밤이 깊어야 새벽이 오듯
인간에 대한 희망이 절망이어야 하느님께 대한 희망이 시작됩니다.
그렇습니다.
밤 중에 어둠을 보지 않고 별을 보는 것은 이제 희망의 시작일 뿐입니다.
밤은 어두움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별도 있음을 봤을 뿐입니다.
이제 별을 비추는 더 큰 빛을 봐야 하고,
별이 인도하는 더 큰 빛으로 나아가야 하며,
더 큰 빛을 본 다음에는 이제 내가 별이 되어야 합니다.
빛에서 빛을 받는 작은 별들이 되어야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혼자 자기가 빛나는 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빛으로 인도하는 별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과 나의 선행이 어두운 세상에 한 줄기 빛처럼 빛날 때
그것이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향하게 하고 모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선을 가리키고 인도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말씀의 소리일 뿐이라는 세례자 요한처럼
하느님 사랑 때문에 사랑을 실천하고
하느님 사랑 덕분에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나는 참 빛의 잔별일 뿐이라고 말이 아니라 행위가 말해야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표양으로 다른 이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하는 거룩한 행위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습니다.”라고 하는 프란치스코의 권고를 귀담아듣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