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께서는 세례를 주고 있는 세례자 요한에게 오셔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시는 주님을 세례자 요한이 알아보고 그럴 수는 없다고,
자기가 오히려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세례를 줄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당연하고 저라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제가 본당에서 새 영세자에게 세례를 주고 있는데
느닷없이 주님께서 나타나 그 줄에 같이 서 계신다면
저는 기절초풍할 것이고 왜 이러시나 하고 그 뜻을 몰라 당황할 것입니다.
이런 세례자 요한에게 주님께서는
당신이 세례받으시는 이유랄까 뜻을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심오한 뜻이 있겠으나
오늘 저에게는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 우리 같이 힘을 합치자는 말씀 같고,
그래서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에게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 뜻대로 사는 의로움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두가 그 대열에 참여해야 하는데 세례자 요한도 우리도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세례자 요한에게 “우리”라고 하시며
당신 구원사업의 파트너로 초대하시는데, 이는 대단한 신분 격상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초대하시는데
이 또한 우리를 세례자 요한처럼 여기시는 대단한 신분 격상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능력으로만 구원하신다면 말씀 한마디로 구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하느님은 말씀 한마디로 모든 것을 생겨나게 하셨고,
백인대장의 종을 말씀 한마디로 고쳐주실 정도로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셨고,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거룩한 뜻이기에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굳이 이 세상에 들어오시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시고
그리고 굳이 요르단강 물에도 들어가시어 우리와 똑같이 세례를 받으시는 겁니다.
이는 마치 물귀신 작전 같기도 합니다.
같이 죽자는 물귀신 작전인데 그러나 나쁜 뜻의 물귀신 작전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거룩한 죽음을 같이 죽자는 영적인 물귀신 작전입니다.
사실 세례의 의미가 이것 아닙니까?
죄에 대해서 죽고,
세상에 대해서 죽고,
하느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죽으려고 들지 않으니
당신이 먼저 죽으시며 같이 죽자고 하시는데
오늘 주님의 세례는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이 거룩한 물귀신 작전에 같이 참여하겠습니까?
제가 올해 들어 새로 강의를 준비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프란치스칸 영성 센터에서 <프란치스코의 권고>를
한 학기 강의하게 되었고 또 수녀원 연 피정 강의도 맡게 되어
그 강의을 준비해야 합니다.
전에 같으면 매일 강론 올리며 특강 준비도 병행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솔직히 그럴 능력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득이 새 강론을 올리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 대신 전의 강론을 올리는 것이 그나마 안 올리는 것보다 낫겠다 싶어
지난 강론을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양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