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보다 위대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댜 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되심으로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내려놓으신 아드님께서는
다시 한 번 요한에 비해
자신을 낮추십니다.
이것은 오늘 복음에서
모든 의로움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표현됩니다.
정의의 실현을 위해
하느님께서 겸손의 모습을 택하십니다.
정의의 실현을 위해
우리가 선택하는 모습은
겸손이 아닌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정의를 위해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데
판단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낮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사람이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정의의 실현을 위해
다른 사람보다 높은 자리를 선택하게 됩니다.
또한 그 판단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즉 다른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내가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권위를 찾게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께서 의로움을 이루시기 위해
겸손을 택하셨다는 것이
언뜻 이해하기 쉽지는 않습니다.
권위가 없다면
그것이 지켜지기 어려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방식이
하느님의 방식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생각 같아서는
이루기 불가능해 보이고
이루어지더라도 더디게 될 것 같아
기다리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천천히 이루어진다고 해도
변화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루어진 변화가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
공동체를 바꾸어 놓고 싶은 마음은
우리를 권력에 대한 유혹으로 이끕니다.
변화를 원할수록
힘에 대한 원의도 커집니다.
그러나 권위가 없어도
변화는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면
변화를 원하는 것과 힘을 원하는 것은
서로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나는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지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