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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황홀경에 빠진 성 프란치스코 (1640)
   가 :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1593-1652​)
   기 : 캠버스 유채 154X163cm
소재지 : 프랑스 테세 미술관





  요즘 세계 어디로 가나 정도의 자이는 있을망정 휴대 전화를 이용해서 동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나서 자연스러운 문화 현상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자기가 원하는 정보는 뭣이던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많이 접속하고 있는데, 지금 유튜브만큼 빨리 세계인들을 붙들고 있는 것은 없으니 오늘날 휴대전화나 컴퓨터가 일상 삶을 지배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이런 것을 통해 사람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현세 삶의 가치와 즐거움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유튜브를 통해 영적인 체험을 찾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현세 삶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찾기 위해 많이 이용하며 이런 기대는 어느 시대인들 없지 않았지만, 현대만큼 현세 삶의 행복에 대한 기대를 쉽고 빠르게 성취할 수 있는 시대는 없었다.




이런 경향에 의해 요즘 새로 떠오르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생겼다.

재벌 남성과 인기 연예인, 인기 운동선수와 텔레비전 방송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여성과의 결합이 성공 신화의 매력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부와 출세를 바탕에 깔고, 미모와 화려한 집안 배경을 통해 자기의 성공을 과시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다.

부와 출세가 어느 시대인들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지 않을 때가 없었지만 오늘만큼 완벽하게 매력의 조건으로 정착된 시대는 없었다.





종교 역시 이런 경향에 부응해서 사람들에게 종교가 현세 삶의 축복을 얻는데 효과적인 도구로 선전되면서 많은 사람을 모으고 있다.

이 땅에서 대형 교회일수록 이런 메시지로 사람들을 모으고 있으니 종교 역시 현세 삶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부적 수준으로 변질되고 있다.



몇 년 전 소위 서울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의 어느 개신교 교회 주보를 보면서 실소를 한 적이 있다.

그 교회 목회자는 자기 교회에 나와 열심히 예수를 믿으면 현세의 축복이 넘친다는 것을 욥기의 강의를 통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주님께서는 욥의 여생에 지난날보다 더 큰 복을 내리시어, 그는 양 만사천 마리와 낙타 육천 마리,
겨릿소 천 쌍과 암나귀 천 마리를 소유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얻었다.
그는 첫째 딸을 여미마, 둘째 딸을 크치아, 셋째 딸을 케렌 하푹이라 불렀다.
세상 어디에서도 욥의 딸들만큼 아리따운 여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아버지는 그들에게도 남자 형제들과 같이 유산을 물려주었다.” 
(욥기: 42: 12- 15)




이 목회자의 글은 자기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 재운, 출세운에 겹쳐 딸들은 유명 재벌 집안이나 돈 많은 인기 스포츠 선수의 아내로 발탁될 수 있는 매력적인 존재로 변심할 수 있다는 어이없으면서도 귀가 솔깃한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하느님이 아주 유능한 성형외과 의사도 된다는 어이없는 광고로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이고 있다.


문제는 이런 황당한 이론에 귀가 솔깃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 교회 목회자가 이 글을 쓸 때 이 교회는 가게 수준의 개척 교회였다가 오늘날에는 대형 교회는 못되더라도 중형교회 수준이 된 것을 보면서 오늘 이 땅 종교의 현실을 보게 된다.



예수의 이름과 껍데기만 걸치고서 세상적 가치를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히 실현할 수 있는 곳으로 교회를 선전하면서 이런 유혹에 빠지는 것을 종교 생활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만만찮은 현실의 종교 현실을 보게 된다.






누구나 정신이 바로 박힌 사람들은 현실적 부와 성공과 안락한 가치를 삶의 최고로 여기는 오늘의 사회 현실을 정상으로 보는 사람도 없고 이런 잘못된 삶의 목적을 부추기는 일부 종교의 태도를 종교적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정상인데 다행히 제도적인 우리 가톨릭교회는 교황님을 통해 이것의 산 증거를 보이고 있다.



오늘의 우리 교회 역시 종교적 가치가 피폐해지고 영적인 가치에 대한 반감이나 무관심으로 교회를 떠나는 신자들이 늘어나는 현실에 고민하고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섬김 (Ministerium)인데, 교회는 자기의 조직 유지의 강화책으로 교도권(Magisterium)에 초점을 맞추면서 교회는 복음이라는 핵심 가치의 강조와 조직 강화라는 두 토끼를 노리는 집단으로 처신하고 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어떤 때 복음의 가치보다 조직의 강화라는 초점이 더 강조되는 복음의 무덤과 같은 집단이 되면서 세상으로부터 복음의 향기를 잃은 것이 오늘 이 시대의 뼈아픈 현실이다.




이런 혼미스러운 시대에 하느님께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라는 당신 종을 통해 당신 교회를 쇄신시키고자 하셨다.

그가 교황이 된 것은 전임 교황의 선종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 앞에 사임한 전임 교황의 자리를 메운 것이었다.



그는 예수회 출신의 첫 번 교황이 되면서 좀 예외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시작하셨고 이것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프란치스코의 정신과 태도로 세상을 사목하시기로 하신 것이다.

한마디로 이름만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프란치스코가 아닌 자신의 사목 방향을 바로 프란치스코의 가르침과 그분 삶에서 보인 실천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한 것이다.



그러기에 그분이 교황직을 시작하시면서 하신 모든 언행은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에서 시작했으며 특히 온 세상의 기후 문제와 재앙에 대한 유명한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전적으로 프란치스코의 글인 태양의 찬가를 바탕으로 전개하면서 지구의 종말에 대해 고민하는 선의의 모든 사람에게 희망의 해결책을 제시하신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프란치스코는 교회 안에 있는 다양한 성인 중 탁월한 한 분이 아니라 현재 세상의 재앙과 위기의 상황에서 인류가 걸어야 하는 정상적인 길을 안내자가 된 것이다.




교황님이 제시하고 있는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참으로 단편적이고 피상적이다.


부잣집 아들로서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새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성인의 모습이나 아니면 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광폭한 늑대를 길들인 것 같은 낭만적 인물, 극도의 극기와 고행으로 영웅적 삶을 살았던 성인 정도로 생각한다.




이것은 성 프란치스코의 편모에 불과하며 성인은 복음이 무엇인지 자기 삶으로 가르치신 분이며 그분의 삶이 바로 펼쳐진 성서였기에 교황님께서 성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으로 이 세상의 문제 해결의 비방을 제시하시자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성인은 중세 이탈리아 소도시 아씨시에서 무역상이었단 아버지에게 태어난 일곱 자녀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그의 부친은 아내와 자식에 대한 끔찍한 애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의 자식 바보 같은 성정은 자신이 사업차 출타 중일 때 출산한 아들의 이름을 자기 아내의 국적인 프랑스의 이름을 따라 지을 만큼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프란치스코는 이탈리아 순종이 아닌 프랑스와의 혼혈에서 태어났기에 정신적으로 자유로움이 있었으며 사고에 있어서도 경직된 태도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처지에서 사랑이 많은 가족 배경에서의 성장은 그가 더 높은 가치를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던질 수 있었고 이 가치를 바로 하느님 안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처럼 현세적인 가치에 최고의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맞추었기에 조잡스럽지 않고 시대를 초월해서 신선한 감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성 프란치스코는 오늘처럼 세상적인 것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는 시대에서 현대인들이 진정으로 찾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찾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많은 전기 작가가 프란치스코가 어릴 적부터 화려한 옷을 즐겨 입고, 부유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탐미주의적인 생활을 했다고 쓰고 있지만, 세속에 대한 환멸은 그의 인생에서 상당히 일찍 찾아왔다.




그런 그도 아버지의 열망에 의해 세속적 삶에 대한 새로운 도전적 유혹을 받게 된다.

자식 사랑이 대단했던 아버지는 프란치스코를 출세시키기 위해선 평민으로서 할 수 있던 유일한 출세의 길인 기사가 되는 길을 자식에게 열어주는 것이었다.




돈이 많은 그에게 자식을 위해 기사의 길을 열어주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겨 시작했으나 중간에서 포로가 되는 체험으로 실패하고 몸값을 지불하고 돌아와 요양 후 다시 기사가 되기 위해 전쟁에 나가다가 환시 속에서 수많은 갑옷과 무기가 있는 방 안에 있던 중에 “주인을 섬기겠느냐? 아니면 종을 섬기겠느냐?”는 목소리를 듣는다.

 “주인을 섬기겠다는 대답을 한 후 기사가 된다는 것은 그에게 무익한 일이란 결심을 하고 프란치스코는 아시시로 되돌아갔다고 전해진다.





한마디로 삶의 목표와 과정이 세상의 가치나 유혹이 아닌 하느님이라는 것으로 전환과 격상이 된 것이다.




프란치스코의 명망에 감동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의 수도회는 급속히 팽창했으나 그에 반해 수도회의 조직성이 제대로 따라오지 않으면서 많은 문제를 만들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많은 심적인 고통을 받아야 했으나 하느님의 안배에 굳게 의지하면서 기도의 삶을 살다가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체험인 오상 체험을 하게 되면서 그는 인간적인 모든 고뇌와 번뇌에서 해방된 인간이 되어 하느님을 삶의 모든 것으로 여기며 큰 희열의 삶을 살았다.




그가 임종 직전에 지은 태양의 찬가는 이번 교황님의 사목 방향에 큰 영감을 준 작품인데,

여기에 보면 태양과 불, 바람 등을 ‘형님’으로, 달과 별들, 물, 땅, 죽음 등을 ‘누님’으로 호칭하고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일생을 괴롭혔던 안질이나 다른 만성 질병들을 ‘자매들’이라고 여느 인간이 겪어야 했던 것보다 더 큰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 삶의 중심으로 여기며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그의 일생을 지배했던 구호는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여!” 라는 것이었으며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요 하느님을 소유하지 못하면 다른 모든 것은 허접스러운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성 프란치스코가 보인 삶의 실상이었다.



이 작품은 이런 경지에 이르기까지 프란치스코가 겪어야 했던 인간적인 고뇌 속에서도 그의 삶을 버티게 해준 영적인 희열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희열이라고 할 때 인간적인 고뇌와 고통에서 면제된 어떤 상태를 생각하고 있으나 이것은 정반대이다.





우리가 현대 유행처럼 이 세상적인 것의 가치의 극대화로 하느님이 주시는 더 큰 삶의 기쁨과 보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현실 안주 위주의 인생을 삶의 최고 상태로 여기는 현실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벌레 같은 인생에서 탈출하게 만드는 좋은 기폭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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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프랑스 출신으로 당시 통념적으로 유행하던 사실주의 형태의 작품을 남기고 성서적 내용도 많이 남겼지만, 일반적인 사회상도 남기면서 상당히 의식 있는 작가로서의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을 남겼다.





작가의 작품 특성은 이 작품에도 있는 것처럼 촛불 비치는 장면을 그렸으며, 그가 살던 당시에는 꽤 유명했으나 그 후 20세기까지 거의 잊혀 있었다.

전에 그의 것으로 잘못 알려졌던 많은 작품에 대한 오해가 밝혀지자 오늘날 프랑스 회화의 거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완숙기의 그림들은 인간 형체를 기하학적으로 단순화시키고 촛불이나 횃불만이 빛나는 실내 정경을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 역시 수도회 창설자로서 고뇌하는 모습과 고뇌하는 스승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는 제자 사이에 촛불 하나가 비치고 있다.

촛불에 비친 제자와 성 프란치스코의 모습은 더 없이 지치고 고단한 모습이라 현대에서 성공 모델로 강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실패한 인간의 고통스러운 모델처럼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바로 이들 사이를 비추고 있는 불빛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고귀한 것이며 여기에 인간 삶의 참 성공이 있음을 조용하면서도 찬란히 전하고 있다.



라 투르의 작품은 또 색채와 구성에서 매우 독창적이다.

형체를 단순화시키는 특징으로 많은 작품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현대적으로 보인다.



삶을 목표를 세상에서 성공으로 보이는 것에 두고, 종교인들까지도 이 목표 달성의 수단으로 종교를 이용하는 어리석은 삶이 아닌, 어떤 처지에서도 하느님의 뜻대로 살 때 인간의 삶을 고귀하면서 또 위기의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이 성 프란치스코의 모습은 오늘 우리 신자들에겐 성인의 삶을 낭만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자신이 정화되고 세상의 빛으로 변화되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통과 실망 불안의 긍정적인 차원도 함께 수용해야 함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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