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이 예수님께 청합니다.
딸을 위한 청을
예수님께서는 한 번에 들어주지는 않으십니다.
자녀들에게 주어야 할 것을
강아지들에게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청하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무엇을 해서
그에 합당한 대가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하신 말씀이
때로는 우리에게도 야속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어떤 조건에 맞아야만
청하는 것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여인은 말합니다.
그 은총이 직접 나를 향한 것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을 향한 것의 간접 효과로도
그것을 받을수만 있다면 감사할 수 있다고.
먼저 자녀들이 배불리 먹어야 한다는 것을
여인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서도 내가 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만큼 그녀의 청은 다급했고
청하면 받을 수 있다는 믿음도 굳건했습니다.
하느님께 청하는 것을 받을 자격을 따지다보면
무엇인가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청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받지 못할 때
내가 무엇을 하지 않아서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합당한 대가로만 받을 수 있다면
우리가 하느님께 받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께 받은 것이 아니라
내 노력의 결과라고 말할 것입니다.
물론 청한다는 것 자체가 무엇을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기도한다는 것
하느님과 대화한다는 것도
우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은총이 기도에 대한 보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들인 노력에 비해
과분할 정도로 하느님께서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도라는 노력은
하느님께서 주실 때까지 우리가 기다릴 수 있게
우리를 준비시켜주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청하면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키워주는 시간입니다.
받을 자격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청한다는 그것으로
이미 받을 자격은 충분합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 우리의 청원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