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781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그리스도의 평화

 

   이글은 황종렬 박사님께서<공동선> 2009년 5,6월호에 기재하신 글입니다.

 

 

“화분 그리스도론”을 아시나요?

 

그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 같지 않게 망가져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질겁하였다. (이사야서 52장 14절)

 

  올해 수도자신학원에서 생태영성을 강의하면서 더욱 더 새롭게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살림 안에서 존재하는 모든것이 서로 바닥이 되어 주고 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흙이 온 존재의 바닥입니다. 물이 온 생명의 바닥이고, 숨을 가능하게 하는 공기가 온 생명의 바닥입니다. 이 흙과 물과 공기를 있게 하시는, 이것들의 바닥이신 하느님은 더 보이지 않게 더 가난한 방식으로 바닥의 바닥에서 바닥의 바닥으로 우리를 있게 하고 살게 하십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강도만나 다 죽어가던 그 사람의 눈길로 온 생명, 온 존재를 만나는 이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수도자신학원에서 생태영성을 통하여 깨닫는 또 다른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학의 장벽이 무너져 내리고 삼라만상에서 배우면서 교수와 학생의 경계도 완전히 해체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생태영성에서는 하느님의 살림이 원래 그런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살리고 세웁니다. 바닥이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배우는 사람들이 가르치는 사람을 하느님의 다스림 안에서 서게 하고, 가르치는 일을 한다는 사람은 배운다는 사람들이 그분 안에서 서는 데 동반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 수사님이 허브와 화분에 관하여 나누어 주신 내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선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허브 농장에 처음 들렀을 때 ...그 안에는 허브 농장을 구경하러 온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 수많은 허브들이 가득 차 있었구요. 사람들은 허브의 향과 멋과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허브를 감상하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답니다.

 

“이 허브가 아름답고 좋은 향기를 내고, 사람들한테 유용하게 쓰이지만 이렇게 자랄 수가 있는 것은 그것을 키워주는 흙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흙이 있기 위해서는 그것을 담아 주는 화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수사님은 “사람들이 ... 허브만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가치 있고, 허브만이 좋은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허브를 자라게 한 화분의 소중함과 가치는 잊고 있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허브의 바닥 흙을 거쳐서 흙의 바닥 화분에 이르게 된 것인데요, 당시 수사님의 눈에 비친 화분들은 보잘것없어 보이기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허브의 화분들은 깨어진 것도 있었고, 별 무늬도 없고, 흙이 묻어 있어서 더러워 보이고,, 등등...정작 허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가장 보잘 것 없어 보였고, 가장 가치 있는 것이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다시 이런 화분들을 그리스도와 연결짓기에 이릅니다. “그리스도의 삶과 화분의 모습이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심지어 동일하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면서 이렇게 진술합니다. “당시 유다인들과 로마인들이 예수님께 취하셨던 행동은 무관심과 모욕, 그리고 멸시 ... 그것도 모자라서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죽이기까지 하였던 예수님의 삶이 아무 보잘 것 없는 화분의 모습과 흡사했던 것이었습니다.”

 

  사진: 이종수

 

말하자면, 수사님은 허브 농장 체험을 통해서 화분 그리스도론을 펼쳐가게 된 것인데요, 허브와 함께 열어간 바닥 그리스도론의 결론이 이렇습니다.

 

“화분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나서는 우리 수도자의 삶과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보잘것없는 화분처럼 세상에 소중하고 가치있는 일을 하면서도 정말 작은 자가 되어서 살아가는 것, 비록 그렇게 했을 때 사람들로 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외면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수사님은 여기에 이어서 다시 중요한 진술을 하십니다. 생태영성을 하다 보니 신학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사람이 외국에 유학 가서 비싼 돈 들여 가면서 수 많은 세월이 흘러 노력한 끝에 유명한 신학대학에서 석사, 박사 과정을 밟고 되는 것이 신학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의 생각은 많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신학을 배우는 것은 아무나 배울 수가 있는 것이고 책을 통해서 배우는 신학만이 아니라, 깨어진 화분, 흙이 묻어 있는 더러운 화분, 아무 모양도 없는 질그릇 같은 그러한 화분을 통해서도 신학을 배우고, 그리스도를 배우고, 진리를 깨닫고, 수도자의 삶을 배울 수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성경을 통해서는 물론이고 하느님의 창조라고 하는, 지구라고 하는, 우주라고 하는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서 역시 누구나 자기의 삶의 자리에서 충만하게 신학을 할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생태영성을 통해서 이제 강의실 안에서 하는 공부의 틀을 훌쩍 뛰어넘어서 버린 것입니다.

 

   하느님의 온 창조물이 서로 살림의 길을 주고받는 것, 이것이야말로 신학의 참 이유이고 목표이며, 이것이야말로 제가 생태영성을 통해서 신학적으로 발생시키고 싶은 궁극 목표 가운데 하나입니다. 생태영성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 안에서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그 자유를 우리 함께 충만하게 나누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디 우리 교회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저 온 생태 바닥들을 타고 하느님의 영 안에서 우리 민족과 함께 생태영성을 사는 축복을 한껏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생태란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자기 전달에 대한 응답이라는 것, 하느님이 우리의 집이 되어 주심에 대한 증거이며 찬양이라는 것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보다 더 충만하고 아름답게 체험하고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2 관계 안에 불을 놓으시는 진리이시며 선하시고 아름다움이신 성령 관계 안에 불을 놓으시는 진리이시며 선하시고 아름다움이신 성령   마르틴 부버는 ‘모든 관계는 너와 나와의 관계이며 너와 나와의 관계가 아닌 관계는 나와 그... 이마르첼리노M 2023.08.14 374
111 6. 숙고하는 영을 성장시키 6. 숙고하는 영을 성장시키기 무엇이 진실로 좋은 것인지를 가려내는 영적식별은 때때로 꽤 쉽다. 상황은 옳은 것을 제시하고 당신은 즉각적으로 무엇을 해야하는... 김상욱요셉 2023.08.19 295
110 마음을 다스리게 하는 힘의 원천 마음을 다스리게 하는 힘의 원천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려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정신이... 이마르첼리노M 2023.08.20 313
109 7. 영적 치매를 주의하라. 7. 영적 치매를 주의하라 겸손과 같이 일상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또 다른 덕은 감사함이다. 감사의 필요함은 신약의 나병환자 열 명 비유 말씀에 강하게 나타난... 김상욱요셉 2023.08.28 277
108 창조를 모르면 아무것도 모릅니다. 창조를 모르면 아무것도 모릅니다.   창조를 모르면 아무것도 모릅니다. 자신을 내어주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으로부터 창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창조의 아름다... 이마르첼리노M 2023.08.31 327
107 하느님 나라의 새 이름 (상호존중의 원 안에서 누리는 참여) 하느님 나라의 새 이름 (상호존중의 원 안에서 누리는 참여)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미지는 삼각형의 꼭대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 이마르첼리노M 2023.09.05 386
106 8. 내려놓음(letting go)의 영성 8. 내려놓음의(Letting go) 영성 우리가 삶의 다른 단계들을 통과할 때나 삶의 자연적이지만 예견하지 못한 모퉁이를 돌도록 초대되었을 때, 새로운 관점에 열려 ... 김상욱요셉 2023.09.09 318
105 최상의 좋음을 표현하는 예술 최상의 좋음을 표현하는 예술   영의 인도를 받으면 내면의 기쁨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커지면 커질수록 내... 이마르첼리노M 2023.09.11 404
104 멈추는 일과 쉼 속에서 만나는 하느님 멈추는 일과 쉼 속에서 만나는 하느님 “너희는 멈추고 하느님 나를 알라”   휴가 1 바라봄 초원의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가을 전령사들이 연주하던 교향곡도 마... 이마르첼리노M 2023.09.14 431
103 여기가 어딘가요? 여기가 어딘가요?   꿈들이 만나 봉오리를 내밀었지 저녁 바닷길을 걸으며 단순한 기쁨 한 송이 꿈에 동참하는 또 한 송이 꿈의 연대가 만드는 우리의 운명 미래... 이마르첼리노M 2023.09.16 228
102 얼굴 얼굴   풍랑이 이는 바다 감출 수 없는 진실   우상 앞에 놓인 제물 단절과 부재의 땅   허물어진 성전 회칠한 무덤 가짜들의 천국 진짜들의 지옥   청옥 빛 눈망... 이마르첼리노M 2023.09.18 267
101 9. 영적 슬픔에서 지혜를 캐기 9. 영적 슬픔에서 지혜를 캐기 작가 하버트 조지 윌슨은 자신을 불행한 이라고 묘사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는 주기적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 김상욱요셉 2023.09.18 537
100 선을 어둡게 하는 헛된 환상 선을 어둡게 하는 헛된 환상   사랑을 맛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신학교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하느님과 나 사이에, 너와 나 사이에, 창조된 모든 피조물과 나 ... 이마르첼리노M 2023.09.19 253
99 내어주는 사랑으로 연결 되지 않는 기도는 심판하는 저울이 됩니다. 내어주는 사랑으로 연결되지 않는 기도는 심판하는 저울이 됩니다.   영의 현존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내면의 자유를 누립니다. 성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는... 이마르첼리노M 2023.09.23 350
98 10. 당신 마음의 렌즈를 재조정하기 10. 당신 마음의 렌즈를 재조정하기 우리는 사실과 가상을 섞어 인식한다. 개인의 양성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진실이 아닌 것을 최소화하도록 해야 한다. 부드... 김상욱요셉 2023.09.28 361
Board Pagination ‹ Prev 1 ...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 ... 101 Next ›
/ 101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