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
2023년 3월 10일 금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마태 21,42)
그리스도께서 ‘돌’로 불리시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그분께서 놓으신 기초는 튼튼하여 그분 위에 서 있는 이는 거짓스런 속임수에 넘어가거나 박해의 폭풍에 흔들리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악한 자들이 그분 안에서 완전하게 파멸하기 때문입니다. 돌과 부딪히는 것은 모두 산산조각 나지만 돌은 멀쩡하듯, 그리스도 신앙에 반대하는 자는 누구나 파멸하지만 그리스도교는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바위라고 하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누구나 부서지고, 그 돌에 맞는 자는 누구나 으스러질 것이다”(루카 20,18: 참조: 시편 118.22-23: 이사 8,14-15).
부서지는 것과 으스러지는 것은 다릅니다. 부서진 것들 가운데에는 큰 조각들도 있지만, 으스러지면 티끌이 되어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들을 돌이 부수는 것이 아니라.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들 스스로 부서집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파멸은 돌의 힘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떨어진 그들의 잘못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 미완성 작품-
성인 / 영적 글 묵상
50가지 예수 모습 / 안셀름 그륀
32. 다정다감 예수
하인리히 뵐은 예수님의 다정다감하심을 새롭게 발견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교회가 오만한 독단주의에 빠져 누구에게나 옳은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안다고 내세우고 규범에 맞지 않은 것은 모두 단죄 · 고립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예수님의 다정다감하심을 이런 독단론과 대비시켰다: “굳이 말씀드린다면 신약성서에는 ‘다정의 신학’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어루만짐으로, 입맞춤으로, 함께 하는 식사로, 그것은 언제나 치유의 효력을 발휘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규범으로 묶어 놓는 바람에 모두 망쳐 버렸습니다. ‘로마'가 교의와 규범, 말하자면 교리를 만들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신약성서가 지닌 ‘다정함’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155)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3월 1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마태 13-17장
금주간 생태 행동
<생태 아낌 주간>
물.전기.자동차.구매와 소비
개인 혹은 공동체 차원에서 먼저 하루를 정해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금요일 성인의 날
영적 삶의 샘(디다케에서 아우구스티노까지), 요한 봐이스마이어 외 지음
오리게네스
기도에 대하여
형식은 마음대로 행하는 어떤 자의적인 것이 아니다. 표지와 말들도 마음대로 교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일정한 형식과 인습을 존중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종국에 가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만다. 그는 형식 안에 내포되어 있고 보호되어 있는 내용을 잃어버리고 말 위험에 처하게 된다. 형식들은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이 허약하고 빈약하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려운 시기들을 견디어 나가도록 하여, 마침내 그가 그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고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이 세상을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한다.
기도의 형식들은 다분히 인습적이고 습관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단순한 인습적이고 습관적인 것 이상이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살아온 영적 체험들이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도하기 위해 무릎을 꿇는 것과 서는 것, 허리를 숙이며 예를 표하는 것과 두 손을 모으는 것은 단순히 전례를 거행하기 위한 형식만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의 정신을 깊이 모으게 하는 요소들이다. 이렇게 외적인 형식은 기도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도를 위해 내적으로 준비하게 하고 기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기도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므로 기도를 우|한 자세는 기도의 한 부분이고, 오관을 가진 인간 존재의 본성에 어울리는 것이다. 기도를 위한 자세는 기도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 전체를 기도 안으로 몰입하게 한다.
그의 오관과 지각이 함께 기도한다. 이들은 피조물 전체와 함께 기도한다.
그러므로 오리게네스는 기도의 자세를 설명하는 것을 통해 기도에 관한 생각을 피조물 전체가 함께하는 기도로 넓혀 간다. 각 개인의 오관에서부터 그의 내적 기도가, 나아가 천사들과 성인들의 기도가 모두 하나의 큰 기도안으로 일치해 들어간다. 기도하는 각 개인은 자신의 기도문을 중얼거리면서 혼자 고랍된 존재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의 한 일원으로서 이
세상 전체가 행하는 기도에 동참하고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 어디에나 계시고 무엇이든 들으시는 하느님을 흠숭하고 기도하는 것은 자신을 내놓아 이 우주적 기도에 함께 일치해 들어감으로써 이루어진다.
오리게네스의 이 텍스트는 기도를 위한 외적 형식이 이러한 큰 우주적 기도의 리듬 안에 함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는 다소 진부하게 여겨질 수 있는 설명들을 동원하여 이 사실을 이해시키려 노력한다(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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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 평화 관상 기도의 집
EMAP(Ecology Meryem Ana Platform)
에페소 평화 관상 기도의 집은 순례와 피정을 통한 에페소 성모님 성지 보존과 중동평화와 생태적 회심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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