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I can do it!”, “I can do it!”합니다.
자신감의 표현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정말 야고보의 형제들은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기능의 문제이고, 능력의 문제라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그런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할 수 있는데도 지레 못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아예 시작도 못하는 패배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수난의 잔을 마시는 것인데,
수난의 잔을 마시는 것은 기술의 문제도, 능력의 문제도 아닙니다.
굳이 능력의 문제라고 한다면 사랑의 능력입니다.
사랑만큼 고통을 감수하고
사랑만큼 고통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사랑이 없으면 누구도 고통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길가는 사람,
그래서 아무런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 물을 주기 위해
내가 이 무더위에 찬물을 들고 길가에 서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고통은커녕 작은 수고도 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남편이 꼴도 보기 싫을 정도로 미우면
물 한 잔 청해도 “손이 없어요, 발이 없어요?”하고 거절할 것입니다.

그러니 수난의 잔을 마시는 문제는
“I can”의 문제가 아니라 “I will”의 문제가 먼저입니다.
할 수 있는지를 따지기에 앞서
할 마음과 의지가 있는지를 먼저 따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할 마음이 있다면 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하는데
이 역시 사랑의 문제입니다.
사랑만큼 고통 감수 의지가 있고
사랑만큼 고통 감당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고보의 형제는 수난의 잔을 마실 의지가 있었을까요?
마실 능력은 있었습니까?
이어지는 얘기를 보면 그가 마시려고 했던 것은
수난의 잔이 아니라 영광의 잔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수난의 잔을 마시게 되자 야고보는 도망쳐 버린 것이지요.

그런 그가 그러면 어떻게 수난의 잔을 마실 수 있게 되었을까요?
어떻게 제일 먼저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게 되었을까요?

"I can"이라고 하지 않고 "I can't"라고 하였기 때문이고,
"I can't"라고 하였지만 "I will not"라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려고 하나 제가 할 수 없다고 하였기 때문이고,
할 수 없으니 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유다와 다른 점은 똑 같이 수난의 잔을 거부했지만,
배반의 수치스러움과 죄스러움을 겸손으로 견딘 점입니다.
유다는 수난의 잔을 함께 마실 의지도 함께 마실 수도 없었던
자신의 그 치욕스러움을 못 견디었지만
야고보는 그 치욕스러움이 바로 자기의 것임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너도 마시게 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희망을 걸었고,
주님께 그 힘을 달라고 청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 힘을 주신 것입니다.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사랑의 성령입니다.
없다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주시니
사랑 없다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6Aug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망가지는 사랑과 역 변모

    “여자의 변신은 무죄다.” 언제, 어디서 이 얘기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이 말이 무슨 뜻일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여자는 변신을 위해 옷이나 화장품 사치를 좀 해도 괜찮다는 뜻인지, 모름지기 사람은 늘 같은 모습이어야 하는데, 남자에 비해서 여자는 그렇...
    Date2011.08.06 By당쇠 Reply1 Views926
    Read More
  2. No Image 05Aug

    연중 18주 금요일-살기 위해 죽는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자기 목숨을 잃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살하는 사람일지라도 잃고 싶어서 잃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Date2011.08.05 By당쇠 Reply2 Views799
    Read More
  3. No Image 04Aug

    연중 18주 목요일- 나에게 예수는 무엇, 아니 누구?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고등학교 때 초등학교 동창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얘기를 나누는데 복음을 많이 알고 있었고 인용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았는지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예수님의 삶이 훌륭하고 말씀...
    Date2011.08.04 By당쇠 Reply0 Views847
    Read More
  4. No Image 03Aug

    연중 18주 수요일- 고수들의 한 판 겨룸, 믿음에 대한 믿음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 바람대로 될 것이다.” 언뜻 보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매우 낯섭니다. 마귀 들린 딸을 고쳐달라는 가나안 여인의 청을 거절하시는데, 그것도 유다인들이 보통 이방인을 무시할 때 쓰는 “강아지”라는 표현을 쓰며 아...
    Date2011.08.03 By당쇠 Reply7 Views891
    Read More
  5. No Image 28Jul

    연중 17주 목요일- 나의 곳간은?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 것도 꺼내고 헌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나의 곳간은 어떤 곳간인가? 빈 곳간인가, 가득한 곳간인가. 헌것으로 가득한가, 새것으로 가득한가. 쓰레기, 잡동사니로 가득한 곳간일 바엔 빈 곳간이 낫겠지...
    Date2011.07.28 By당쇠 Reply8 Views1068
    Read More
  6. No Image 27Jul

    연중 17주 수요일- 나날이 새로운 삶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저는 오늘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상인이 부럽습니다. 저는 좋은 진주를 찾아다닐 마음이 그리 없기 때문입니다. 좋게 이해하면 지금, 여기에 제가 만족하기 때문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현재에 안주하기 때문입니...
    Date2011.07.27 By당쇠 Reply0 Views753
    Read More
  7. No Image 26Jul

    연중 17주 화요일- 나는 밀일까, 가라지일까?

    “가라지는 악한 자의 자녀이다.” 나는 밀일까, 가라지일까? 가라지가 아니라 밀이고 싶지만 가라지가 아니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제 주제가 실제 그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라지이면서 밀이라고 감히 주장할 정도로 뻔뻔스럽지 않기 위해서...
    Date2011.07.26 By당쇠 Reply0 Views731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1107 1108 1109 1110 1111 1112 1113 1114 1115 1116 ... 1353 Next ›
/ 135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