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와 지향
2023년 3월 19일 사순 제4주일
고 도미니코 ofm
오늘은 사순 제4주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요한 복음에서는 주님께서 태어나면서부터 눈 먼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공관복음이 수많은 기적 이야기를 전해 주는 데 비히여,요한복음은 일곱 가지 표징만을 언급합니다.
물을 술로 변화시키심(2,1-11),고관의 아들을 고쳐주심(4,46-54),베짜타 못가의 병자를 낫게 하심((5,1-9),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심(6,1-13),물위를 걸으심(6,16-21),오늘 우리가 듣는 태생 소경의 눈을 열어주심(9장),
라자로를 부활시키심(11,1-44),일곱입니다.
잘 알다시피 일곱 이라는 숫자는 완전을 뜻하는 상징 수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 가운데 의도적으로 이 일곱 가지 표징만을 골라 소개하였습니다. 숫자는 비록 일곱에 그치지만 실체를 가리키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표징이 무슨 실체를 설명하기 위하여 동원된 것인지 알려면,이 표징들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될 것입니다. 이 일곱 가지 표징은 가나의 표징과 물 위를 걸으신 표정을 제외하고 모두 병의 치유,굶주림의 모면, 죽음에서의 부활처럼 생명과 연관 됩니다. 이상 일곱 가지 표징은 모두 생명과 연관되면서 최종적으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킵니다.
오늘 요한 복음9장에서 소개하는 태생 소경을 치유하신 여섯째 표징은 초막절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평생 빛을 본 적이 없는 이 사람은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 하여 다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물과 빛의 주제,말씀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공경이 이 표징 이야기에 다 들어 있습니다.
태생 소경의 눈을 열어주어 생명을 살리려는 예수님의 일에 바리사이파는 안식일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그 행위를 가로 막습니다. 유다인들은 안식일의 근본 뜻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안식일은 생명을 창조하고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주권을 공적으로 경축하는 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안식일에도 멈출 수 없는 두 가지 일이 있습니다. 생명을 주거나 살리는 일과, 정의로 세상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 일을 멈추시면 세상은 죽음과 불의가 판을 치는 혼돈이 될 것입니다. 이 일을 하는 것은 하느님의 특권이며 아무도 그것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께로부터 파견 받은 아들도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요한 4,34)을 예수님은 양식으로 삼으셨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생명을 살리는 일을 멈추지 않으시니 아들 예수님도 안식일이라고 해서 그 일을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5,17). 무릇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이는 누구나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일과 정의로운 일을 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첫 자리에 두어야 하며 그 어떤 규정도 하느님께서 주신 고귀한 소명을 막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영적인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 먼저 영적인 소경에서 눈을 떠야 합니다. 영적인 눈을 뜬다는 것은 눈과 입과 귀 등 모든 육신의 오관이 하느님을 향해 열려 그분의 참된 사랑을 깨닫고 그분의 뜻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성 보나벤뚜라의 다음의 말을 묵상하며 영적인 눈을 뜰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창조된 사물들이 그러한 광휘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나 장님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물들의 힘찬 목소리를 듣고도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나 귀머거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분의 모든 작품을 찬미하지 않는 이는 누구나 벙어리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모든 표지를 보고도 제일원리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는 누구나 바보임에 틀림없습니다.”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3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마태 23-26장
금주간 생태 행동
<생태 문화 주간>
생태 지향 :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개인 혹은 공동체 차원에서 먼저 하루를 정해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일요일 성체의 날
<세계 도처에 일어난 성체의 기적(마리아 헤젤러)>
프랑스 작가 샤또브리앙의 첫영성체
어린이들이여! 여러분들은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아는가요? 공상으로 가득찬 동화나 만용을 부리는 인도 탐험의 이야기가 절대 아닙니다. 아니 그 보다는 착한 인간의 진실한 체험이 훨씬 더 아름답지요. 여러분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러분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매우 많은 일을 보셨고 또 경험하셨습니다. 부모님들에게 그 일들에 관해 얘기해 달라고 하세요. 그 모든 일들은 진실하며 실제로 체험했던 일입니다. 더우기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하려고 그들의 삶에 대한 기억을 글로 기록했읍니다. 그래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 르네 샤또브리앙은 아주 정직하고 겸손한 자세로 그가 자신의 첫영성체를 어떻게 맞이했는가를 기록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당시 유감스럽게도 열 넷인가 열 다섯 살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첫영성체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어요.
“제가 첫영성체를 하는 날이 점점 다가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의 열심함과 경건함이 참된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저의 모든 모범적인 행실은 신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정말로 저의 수많은 헌신적 행동과 고행은 저의 선생님들을 거의 불안하게 만들 정도였으니까요.
저의 고해신부님은 신학교의 교장선생님이셨습니다. 그분은 대략 50세쯤 되셨는데 엄격하고 근엄한 풍모를 갖추신 분이셨어요.
제가 고해를 하러 갈 때면 그분은 언제나 많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혀 저의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신부님으로서 그분의 여러가지 사랑의 말씀들이 아마도 제가 고해했던 작은 잘못들에 대한 저의 커다란 당혹감을 풀어 주지는 못했던가 봐요. 그런데 그러한 저의 당혹감은, 더우기 제가 감추려고 했지만 역시 저의 행동에서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첫영성체를 하는 날이 가까와질수록 저는 그분의 성화에 화가 났습니다.(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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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 평화 관상 기도의 집
EMAP(Ecology Meryem Ana Platform)
에페소 평화 관상 기도의 집은 순례와 피정을 통한 에페소 성모님 성지 보존과 중동평화와 생태적 회심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