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십니다.
눈이 멀어 빛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 사람에게
세상의 빛으로서 빛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치유와 눈먼 사람의 노력으로
그는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세 단계로 묘사됩니다.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십니다.
눈먼 사람의 행동도 세 단계로 묘사됩니다.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즉 눈먼 사람이 보게 된 것은
예수님과 눈먼 사람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처음에는 예수님과의 관계가 그리 깊지 않아서
자신을 치유해 주신 분을
예수님이라는 한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자신의 치유를 다시 돌아보게 된 그는
예언자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자신의 과거를 알아맞힌 예수님을
표현한 단어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온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아직 예수님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부를 때
자신이 예수님 덕분에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 그는
예수님을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좀 더 정확히 알게 되고
그 관계가 좀 더 깊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과 직접 대화하면서
예수님을 사람의 아들로 알아보고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사람의 아들은
믿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서
들어 올려진다고 표현됩니다.
즉 치유된 사람은
이제 예수님을 구원자로 알아보고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치유된 사람의 모습에서
우리의 신앙 여정을 보게 됩니다.
우선 우리의 삶은
하느님의 은총과 우리의 노력이
함께 만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눈먼 사람의 치유는
예수님의 일방적인 행동이나
눈먼 사람의 개인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하느님의 은총을 구하면서도
우리 각자가 노력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 노력의 과정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점점 깊은 관계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깊은 관계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갑니다.
나의 고통이 죄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고
더 깊은 자유를 살아갈 수 있게 해 줍니다.
물론 신앙생활이
마냥 기쁘고 좋지만은 않습니다.
예수님과 관계가 깊어지는 과정에서
치유된 사람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면서
회당에서 쫓겨납니다.
신앙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위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그 여정
하느님과 점점 가까워지는 그 길 위에 있는
나를 돌아보고
오늘 하루도 그 함께함에
머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