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 바람대로 될 것이다.”
언뜻 보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매우 낯섭니다.
마귀 들린 딸을 고쳐달라는 가나안 여인의 청을 거절하시는데,
그것도 유다인들이 보통 이방인을 무시할 때 쓰는
“강아지”라는 표현을 쓰며 아주 매정하게 거절하십니다.
그러니까 매우 인종주의적인 표현을 쓰신 것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고수들의 한 판을 보는 듯합니다.
믿음 고수들의 겨룸이고 이는 제자들에게 한 수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아셨고, 믿으셨습니다.
믿음에 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강아지 취급을 해도 당신을 주님으로 받드는 겸손과
이 겸손에 바탕을 둔 여인의 진정한 믿음을 아시고 믿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강아지 취급을 해도
그것을 무시하는 것으로 여인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아신 것이고,
그렇게 무시해도 여인에 대한 당신의 속사랑을
여인이 알고 믿는다는 것을 주님께서 아시고 믿으신 것입니다.
과연 주님의 믿음대로 여인은 무시를 해도 무시당하지 않습니다.
거절을 해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당신의 속사랑을 드러내시라고 오히려 들이댑니다.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당신은 저희 모녀를 사랑하시고,
그렇기에 반듯이 고쳐주실 것임을 믿는다고 믿음 시위를 합니다.
이런 믿음 고수들의 한 판 겨룸을 보며 우리는 감탄을 합니다.
아마 제자들도 감탄을 하였을 것입니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고 한탄하신 주님께서
이방 여인의 믿음에 감탄하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한 편으로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다른 한 편으로는 부러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언뜻 보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매우 낯섭니다.
마귀 들린 딸을 고쳐달라는 가나안 여인의 청을 거절하시는데,
그것도 유다인들이 보통 이방인을 무시할 때 쓰는
“강아지”라는 표현을 쓰며 아주 매정하게 거절하십니다.
그러니까 매우 인종주의적인 표현을 쓰신 것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고수들의 한 판을 보는 듯합니다.
믿음 고수들의 겨룸이고 이는 제자들에게 한 수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아셨고, 믿으셨습니다.
믿음에 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강아지 취급을 해도 당신을 주님으로 받드는 겸손과
이 겸손에 바탕을 둔 여인의 진정한 믿음을 아시고 믿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강아지 취급을 해도
그것을 무시하는 것으로 여인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아신 것이고,
그렇게 무시해도 여인에 대한 당신의 속사랑을
여인이 알고 믿는다는 것을 주님께서 아시고 믿으신 것입니다.
과연 주님의 믿음대로 여인은 무시를 해도 무시당하지 않습니다.
거절을 해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당신의 속사랑을 드러내시라고 오히려 들이댑니다.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당신은 저희 모녀를 사랑하시고,
그렇기에 반듯이 고쳐주실 것임을 믿는다고 믿음 시위를 합니다.
이런 믿음 고수들의 한 판 겨룸을 보며 우리는 감탄을 합니다.
아마 제자들도 감탄을 하였을 것입니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고 한탄하신 주님께서
이방 여인의 믿음에 감탄하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한 편으로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다른 한 편으로는 부러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잘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폭우의 은총이 오늘을 작음의 실천으로 시작합니다.
내 신념과 내 상황과 내 자신을 뛰어넘고 주님께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해봅니다.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 몹시 빛나는 아침입니다^^
하느님나라를 위하여 애쓰고 수고한 땀방울을 주님께서 기억해주시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신부님의 두 무릎이 날마다 더 튼튼해지기를 기도합니다.
Not by Might nor by Power, but my Spirit, says the Lord Almight (Zechariah 4:6)
쏟아지는 비가 오리혀 은총의 비가 되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