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다가 사는 법을 얘기하는 것이 오늘 독서와 복음의 가르침이지만
오늘 주제를 약간 빗겨나 불평불만을 잠재우는 법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독서가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주님께서 잠재우시는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이 짧은 얘기에 불평불만의 원인과 처방이 있습니다.
우선 불평불만의 원인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양식이 있는데 그 양식이 그들에게 보잘것없어 보이고,
심지어 양식도 없고 물도 없다고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원하는 양식이 없고 충분한 물이 없는 것뿐인데 말입니다.
불만이 보통 그렇습니다.
이것이 있는데 저것을 원하니 이것이 불만이고,
이만큼 있는데 저만큼 있기를 바라니 이만큼이 불만이지요.
있는 것은 만족치 않고 없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것의 문제이고,
이 정도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욕심 곧 ‘더’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또는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고 불평까지 할 경우,
이에 직방인 처방이 바로 극약처방이고 최악 처방입니다.
지금까지 백성의 요구와 불평을 들어주신 하느님께서
불평이 이렇게 계속되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먹으시고
이번에는 죽음이라는 최악을 극약처방 하십니다.
죽음이라는 최악을 생각하면
죽음만 아니어도 다 악이 아니고 선이 되지요.
돈이 한 푼도 없을 때는 만 원도 큰돈인 것과 같습니다.
최악이란 최선의 반대이며 선은 하나도 없고 악뿐인 상탭니다.
죽게 되면 사실 존재 자체가 사라질 판이니,
욕망은 사치이고 그래서 욕망도 사라지겠지요.
그러므로 행복하려면 우리는 스스로 최악을 각오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에 의해 최악을 맞이하고
하느님께 간청해 살 수 있는 처방을 겨우 얻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그리고 진정 행복하려면
우리는 그렇게 되기 전에 스스로 욕망을 내려놓고 최악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렇게 합시다.
사랑에는 최선을 다하고,
욕망에는 최악을 각오합시다.
이렇게 하여 불평불만은 잠재우고
행복을 요즘 봄날처럼 꽃피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