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일-2017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제 생각에 오늘 사도행전에서 소개되는 이상적인 초대교회는
<함께> <같이>와 <하나>라는 말이 열쇠말인 것 같습니다.
함께 지내며 함께 먹었다고 얘기하고 있고
모든 것을 같이/공동으로 소유했다고 하고
한마음으로 성전에 모이고 빵을 나눴다고도 합니다.
공동체共同體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共이라는 말은 <함께>라는 뜻이고
同이라는 말은 <같은>이나 <다같이>의 뜻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 공동체란 함께 다 같이 이룬 같은 몸이 아닐까 또한 생각합니다.
여기에 한마음으로 모였으니 초대 공동체는
그야말로 일심동체一心同體가 아니겠습니까?
먼저 함께 이루는 공동체성을 보겠습니다.
너무도 지당한 것이 공동체는 함께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점점 늘고 있고
그래서 ‘혼밥족’이니 ‘혼술족’이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저는 처음 혼밥족, 혼술족이라는 말이 신문에 등장했을 때
한동안 이게 무슨 신조어인지 몰라 이해를 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늙은이들은 가족들과 같이 살고 싶지만 사별하였거나
자녀들이 원치 않아서거나 독거노인으로 혼자 살고
젊은이들은 공부나 직장 때문에 가족과 떨어지거나
혼자 사는 것이 좋아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삽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사는 것은 그야말로 어쩔 수 없지만
요즘 문제는 같이 사는 것을 싫어하거나 같이 살 수 없어서
혼자 밥을 먹고 술까지 혼자 먹는 ‘혼밥족’과 ‘혼술족’입니다.
어떤 때 보면 같이 살겠다고 모인 수도 공동체 안에서도
무엇을 해도 같이 하려 하기보다 혼자 하려는 경향이 늘고 있습니다.
개인주의가 잘못 기능을 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안타까운 현상이지요.
다음으로 같은 몸을 이루는, 같이 하나를 이루는 것에 대해서도 보겠습니다.
‘같은’은 ‘다른’의 반대말입니다. 그러므로 같이 하나를 이룬다는 것은
다른데도 같이 하나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를 이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다름’이나 ‘차이’를 인정치 않는 획일적인 공동체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다름을 인정치 않고 같아야만 한다면
성격이 달라서 같이 살 수 없다고 할 것이고
취미나 신분이 다르면 같이 어울릴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 다음은 다름에도 하나를 이루지만 그 이유가 저속한 경우입니다.
권력이나 이익 등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달라도 그래서 싫어도 한 배를 타는 오월동주吳越同舟 같은 경우지요.
요즘 정치에서 이런 형태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권력이나 이익과 같이 이기주의적인 차원의 목표를 넘어서는,
말하자면 좀 더 숭고한 목표를 위해 하나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산주의자처럼 같은 이념理念과 주의主義 때문에 같이 모이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자기들이 최고의 공동체라고 하겠지만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꼽는 최고의 공동체는 역시 사랑의 공동체일 겁니다.
성격, 취미, 능력, 출신, 생각, 민족, 종교 등 모든 것이 달라도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리고 사랑이 제일 숭고하다는 생각 때문에
하나를 이룰 수 있고, 하나를 이루는 공동체가 최고의 공동체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행전에서 보는 초대공동체는 이것도 넘어섭니다.
차이를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기와 자기 것이 없기에 하나를 이루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초대공동체는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요?
주님의 수난과 부활로 부활의 기쁨, 거듭남의 기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세례로 세상에 대해서는 죽고 진정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사람은
하느님 나라를 소유했기에 이 세상 것을 다 내놓아도 기쁘기 마련이지요.
하느님 나라가 내 것이기에 이 세상 것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그런 부활의 기쁨과 그런 부활의 공동체를 꿈꾸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