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주 월요일-2019
“바리사이 가운데 니코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밤에 예수님께 와서 말하였다.”
오늘 복음을 지금까지 수없이 읽었지만 오늘 처음으로
니코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밤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니코데모가 밤에 찾아왔다는 것을 지금까지 지나쳐 본 것입니다.
니코데모는 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을까요?
아주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남몰래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던 것인데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띄지 않기를 바란 거지요.
왜 그랬을까요?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을 찾아간다는 것이 체면이 서지 않아서?
유대교 지도자가 풋내기를 찾아가는 것이 역시 체면이 서지 않아서?
아니면 다른 바리사이들과 최고 의회 의원들의 시선이나 비판이 두려워서?
제 생각에 이 여러 가지 이유가 섞여서 밤에 찾아온 것이고,
그러기에 니코데모는 아직 인간적이고 세속/육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니코데모는 우리가 복음에서 많이 봐온 다른 바리사이나
최고의회 의원과는 다른 그러니까 훌륭한 면모도 지니고 있습니다.
우선 겸손합니다.
인간적으로만 보면 예수님께서 한참 풋내기인데 최고의회 의원이
예수님을 찾아온다는 것은 인간적인 지위를 따지지 않고
예수님을 스승삼아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겸손은 인간적인 덕에서 비롯된 겸손이 아닙니다.
신앙적이고 영적인 겸손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인간은 하느님 앞에 있는 그대로이지 그 이상이 아닙니다.”라고
프란치스코가 권고에서 얘기하듯 하느님 앞에 있는 자의 겸손이지요.
그래서 니코데모는 예수님께 와 이렇게 얘기합니다.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제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유대 지도자들은 사도들이 한 것이
하늘의 표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들이 세상에서 지닌 위치 때문에
인정하려고 들지 않고 사도들의 활동을 막으려 하고 박해를 하는데
니코데모는 주님이 하느님에게서 온 분이라는 것을 표징을 통해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늘을 추구하는 사람이지 땅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는 늙어서도 위로부터의 지혜를 찾는 열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적인 덕으로 그리니까 겸손과 열망으로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긴 하였지만 아직 위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아니고,
그래서 아직 하느님 나라를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늘을 쳐다보지만 아직 하느님 나라를 보지 못했기에
그래서 그는 더욱 안타까워하고 늙어서도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고파 애타하는 사람입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교리가 습득덕習得德과 주부덕注賦德을 얘기하듯
우리의 노력에 하느님의 은총이 있어야 하고,
우리의 겸손과 열망에 하느님에게서 오는 영이 역사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니코데모가 참 부럽습니다.
세상의 허위와 허영이 없이 겸손하고,
늙어서도 하늘 열망, 구도 열망이 여전히 있으며,
그래서 주님을 찾고 주님을 만나 결국 영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그이니.
니코데모를 영적으로 잘 늙고 실패하지 않는
우리 인생의 모범으로 삼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