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제자들을 세상에 두고 떠나며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이 기도에서 주님은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기에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한다고
하시면서도 제자들을 그 미워하는 세상에 보내시며
세상에서 빼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악에서 지켜달라는 기도를 하십니다.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 제자들을 왜 세상에 보내실까요?
더욱이 제자들을 미워하는 세상에 왜 보내실까요?
그것은 미움받으라는 얘기가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면 속하지도 않고 미워하는 세상에 왜 보내십니까?
그러니 제자들은 미움받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해선 안 되고,
미움받을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들이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설마 미움받이가 되라고만 보내시겠습니까?
미움을 받더라도 뭘 하라고 보내시고,
미움을 받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뭘 하라고 보내시겠지요.
그렇다면 그것이 뭐겠습니까?
우리는 즉시 압니다.
우선 세상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역설입니다.
세상은 당신을 미워하고 제자들도 미워해도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
그래서 더더욱 제자들을 그 가운데로 파견하시는 겁니다.
아무리 당신을 미워하고 제자들을 미워해도 세상은
포기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대상이라는 말씀이고,
미워해도 사랑해야 할 대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러니 믿음 받아도 사랑을 주라는 것이고,
사랑 중에서도 최고의 사랑인 복음을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은 이것이 세상과 주님 제자의 차이입니다.
세상은 미워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니, 사랑하지 못합니다.
세상은 사랑하지 않고 사랑치 못해도 제자들은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말씀이라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주님의 제자들은 세상과 달리 주님의 이 가르침을 깨닫고 받아들인 사람들이며,
그래서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을 주는 것이 더 행복한 사람들이고,
미움받아도 사랑하는 것이 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고,
미움을 받아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받아야 하는 사람은 없는 사람이고,
줄 수 없는 사람도 없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줄 수 있는 사람은 가진 사람이고,
안 받아도 되는 사람은 이미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합니까? 주님의 제자입니까?
받아야만 되는 사람입니까? 줄 수 있는 사람입니까?
받아도 헉헉대는 사람입니까? 줄 수 있어 행복한 사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