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오늘 복음은 대사제의 기도 끝부분입니다.
제자들을 두고 아버지께로 가시며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주님께서
이제는 제자들의 말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데
제가 보기에 삼중도로 치면 최고의 경지에 이들이 도달케 되기를 기도하십니다.
먼저 삼중도의 2단계라고 할 수 있는 조명의 단계에 도달케 되기를 기도하십니다.
하느님의 조명을 받아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단계라고 할까요?
주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
나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임마누엘 주님을 보내셨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참으로 신앙의 높은 단계이고 이렇게 될 때 참으로 행복이 시작됩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에 불행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내가 지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그것도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을 안다는 것은 더 큰 행복이겠지요.
그러나 제 생각에 이것은 아직 관념적입니다.
햇빛으로 치면 이것은 해가 떠 있다는 것을 아는 수준입니다.
아직 그 햇빛을 받고 그 햇볕을 쬐는 수준은 아닙니다.
삼중도의 최고 단계는 일치의 단계입니다.
하느님 사랑 안으로 들어가고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는 단계입니다.
하늘에 떠 있던 하느님의 사랑이 해의 빛과 볕이 내려오듯
임마누엘 주님을 통해 이 땅에까지 내려와 머무시는데
우리도 그 사랑 안으로 들어가 그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비는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은 당신도 미워하고 그 제자들도 미워하는데
제자들의 말을 듣고 하느님 사랑을 알게 된 사람들도 이제
삼위일체의 하느님 사랑 안으로 같이 들어와 머물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됨으로써 하느님 사랑 안에서 하느님과 하나 되고 모두 하나 되는 겁니다.
오늘 주님의 기도 안에서 중요한 것은, 모두 하나 되게 해달라는 부분입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이 말씀은 끼리끼리만 하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또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나 되는 것,
하느님 사랑 안에서가 아니라 자기들끼리 하나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하느님 사랑 안에서 하나 되더라도
자기들만 하느님 사랑 안으로 들어와 하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마치 열 명이 밖에 있었는데 그중 두 명만 손잡고
집 안으로 들어가 하나의 가정을 꾸리는 것과 같습니다.
둘은 하나가 되지만 결국 여덟은 배제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이런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부러 왕따를 시키지 않아도 이렇게 배제를 하고,
그래서 결국 공동체가 하나 되지 못합니다.
누구하고는 하나 되고 싶지만
누구하고는 하나 되기 싫은 사람이 있다는 얘깁니다.
쉬운 예로 누구하고는 단짝이 되고 싶지만,
누구하고는 짝도 되기 싫은 겁니다.
그런데 누구를 배제하지 않는 사랑일 때
하느님 사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같이 가자고 초대하는데도 상대가 거절해 혼자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내가 배제하여 혼자 들어가면 하느님 사랑 안에 들어갈 수 없음을
가르침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