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의 질문 곧 베드로에게 하신 질문은 질문을 자아냅니다.
주님께서 정말 이렇게 질문하셨을까?
왜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질문하셨을까?
세 번 질문하신 것은 세 번 배반한 것에 대한 사랑 확인 차원이라고 쳐도,
왜 다른 제자들보다 더 사랑하냐고 물으셨을까? 정말 주님의 질문일까?
주님의 질문이라면 왜 그런 질문을 하셨을까?
주님의 질문은 베드로의 말대로 베드로가 사랑하는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 다지기이고, 당신 양들을 맡기기 위한 사랑 다지기입니다.
당신의 질문에 베드로가 답할 때마다
내 양들을 돌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제자에게 당신 양들을 맡기시려는 계획인데
그것도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제자에게 맡기시려는 것입니다.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상처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던 내가 불치병으로 아이를 두고 죽게 되었습니다.
맡아줄 사람이 없으면 보육원으로 보내야 하기에
친지나 지인 가운데서 누구한테 맡기는 것이 좋을지,
그리고 누가 가장 나를 사랑하는지 생각할 것입니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아이를 가장 잘 돌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물으신 것은
몰라서 물으신 것도 아니고 짓궂으시기에 질문하신 것도 아니며
베드로의 입으로 거듭 대답하게 하심으로써 사랑 다지기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보다 더 당신을 사랑하냐고 물으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참 목자요 스승이신 주님 대신 주님의 모든 양을 잘 보살필
최고 목자가 되려면 다른 누구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하는데
그렇게 사랑하는지, 아니 사랑하겠는지 사랑의 의지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교황에게도 똑같은 물으실 터인데
그러나 그것은 다른 누구보다도 더 당신을 지금 사랑하느냐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더 당신을 사랑할 의지가 있는지 다지기 차원에서 물으시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나한테는 묻지 않으실까요?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