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주님을 믿지 못하던 제자들이 성령 강림으로 믿게 되었고
믿게 되자 하느님 능력에 의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데
가장 큰 변화는 불신이 믿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불신이란 다른 가능성에 대한 불신입니다.
내가 알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믿는 것 이외의
다른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신이란 자기를 지극히 믿는 것이고,
자기만을 믿기에 타자는 하느님조차도 믿을 수 없고
자기가 강하기에 자기를 강요하지 남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고 싶으니까 이렇게 하라고 오히려 요구합니다.
자기가 너무 강하여 성령께서도 뚫고 들어가시기 힘들 정도입니다.
따라서 성령께서 내게 오심은 자기라는 껍질이 깨지고 성벽이 뚫리는 것이고
성벽을 사이에 두고 아군과 적군이 싸우듯 자기와 성령의 공방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깨지는 때가 곧 성령이 임하시는 때입니다.
자기가 깨지는 때가 뚫리는 때이기에 온갖 소통이 이뤄집니다.
먼저 성령께서 들어오시고
하느님의 능력이 들어오고
하느님의 말씀이 들어오고
하느님의 사랑이 들어오고
하느님의 용서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인하여 다른 존재들이 내 안으로 들어옵니다.
다른 존재들이 내 눈에 들어오고
다른 사람의 말이 내 귀에 들어오고
다른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에 닿고
돌 같이 차던 마음이 따듯하게 반응합니다.
전에 내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은 침입이었으며
침입을 막느라 늘 전쟁이었고
평화를 깨뜨리는 침입자를 용서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다 괜찮습니다.
모든 것이 용서가 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평화롭습니다.
전에는 도둑이 있어서 울타리가 있었는데
이제는 울타리가 없어서 도둑이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인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듯
성령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입니다.
전에 담을 쌓고 살았던 이웃이 그리스도입니다.
전에 상처를 주었던 친구가 그리스도가 되고.
맨 날 싫은 소리만 하는 직장 상사가 그리스도입니다.
등 돌리고 자던 남편이 이젠 엠마오의 그리스도처럼 동반자입니다.
그리고 나의 입도 바뀝니다.
노상 잔소리만 퍼붓던 입이 칭찬도 하고,
독설을 토해내던 입이 성령의 언어를 쏟아냅니다.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는 우리말이 있는데 맞는 말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바뀌고 갑자기 바뀌면
그렇게 죽지 않으려던 내가 죽은 것인데
그것이 실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죽어도 좋으니 성령께서 내게 오시길 바라는 나입니까?
이 성령 강림 대축일에 모든 것이 다 바뀌지는 않더라도
한두 가지만이라도 바뀌길 원하는 나입니까?
그리고 바뀐다면 무엇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