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 모습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이 분이 과연 주님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당신이 시장하신데 열매 맺지 않았다고 죽으라고 저주하시고,
성전의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을 난폭하게 쫓아내십니다.
이런 주님이 우리가 알고 있는 주님 맞습니까?
이런 주님을 우리가 믿어야 하고 사랑해야 합니까?
이런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분명 시험하고,
주님의 이런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많이 생각게 합니다.
우선 주님은 우리처럼 당신 입맛에 맞지 않아서 이러신 것이 아니라고
우리는 믿어야 하고, 더 나아가 이런 충격적인 방식을 통해
가르침 주시려고 이러시는 것이라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만약 아무도 없이 당신 혼자셨다면 이러셨을까 우선 생각해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었다.”라고 분명히 얘기하는데
이를 보면 제자들이 들으라고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우선 성전의 주인도 주님이시고 모든 생명의 주인도 주님이시라는 것을
제자들을 통해 세상에 천명하시고 알게 하시려고 이리하신 것일 겁니다.
두 번째로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나 성전은
이런 운명이 될 거라는 경고의 뜻으로 이렇게 하신 것일 겁니다.
복음 다른 곳에서 열매 맺지 않는 나무를 주인이 베라고 하시자
나무 재배인이 주인에게 정성을 들여 더 가꿀 테니 한 해만 말미를 달라고
할 것이라는 비유를 주님께서 들려주시는데 여기서 나무 재배인은 주님이시지요.
그러므로 복음서 전체적으로 볼 때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없어질 운명이지만
주님은 나무들이 열매를 맺도록 정성을 들이는 분이시고,
정성을 들이셨는데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주님도 어쩔 수 없으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떤 열매를 맺기를 원하실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회개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다시 회개의 열매란 어떤 열매입니까?
사랑이고 선행일 것이고,
사랑과 선행으로 많은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열매를 맺는 나무였습니까?
지금 우리로 치면 우리의 성당들은 열매를 많이 맺는 나무입니까?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장사꾼과 도둑들이 설치는 곳이었고
그래서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는 나무와 같았습니다.
지금 우리 성당이나 공동체도 주님 사랑을 나누는 성전이 아니라
자기들의 물건을 사고팔고 이익이나 나누는 곳이라면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이고 주님의 분노를 살 것입니다.
우리 개인도 열매 맺는 나무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도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자들이란 회개하는 사람들이라고
그러니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면서
그러면 오늘 복음의 나무처럼 저주받지 않고 축복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자기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며 자신들의 육신을 그 악습과 죄와 더불어 미워하고,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며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사람들, 오, 그런 일을
실천하고 그런 일에 항구하는 남녀들은 얼마나 복되고 축복받은 사람들인지!”
주님께서는 불행해지라고 저주하시는 분이 아니라
회개치 않으면 불행해질 거라고 경고하시는 분이라고 우리는 믿지만
혹여 저주나 경고나 받고 축복은 받지 못하는 우리가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