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2013.04.15 17:40

봄 밤에 쓰는 편지

조회 수 6827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봄밤에 쓰는 편지


잃어버린 아침을 애석히 여기는 저녁나절의 허적한 심정처럼
지나온 시간들을 바라보면 허전하고 씁쓸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남아있는 그다지 많지 않은 시간들이
이제금 아프도록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내 시야 가득히 신선한 초원의 뒤늦은 도취가
내 어설픈 감정을 두드리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감정이 길을 잃어 미혹의 수렁에 빠지는 일이
너무나 자주 생기는 나의 서글픈 우매함은
앞으로도 좀처럼 고쳐지기 어렵다고 여기지만
세상이 이처럼 어여삐만 보이는 그 고마운 햇빛
그 아래서 이젠 영 벗어나지 않고 살았으면 합니다.

내가 걸어온 짧지 않은 시간들
그 이후에도
시간의 물가에서 굽이치는 물이랑을 얼마간 볼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은
나에게 큰 축복으로 다가옵니다.

아직도 나는 몰랐던 말과 못다한 말들을 줄줄이 엮어
익어가는 밀밭처럼 싱그러운 향기를 뽑고 싶은 꿈에
얼굴을 붉히기도 합니다.

오랜 설렘을 가라앉힌 사람처럼
서성이던 발길을 멈추고
이젠 하나의 좌석을 정해 앉아있고 싶습니다.

이해와 신뢰를 갖고
그 위에 더하여 사랑으로 함께 있어 준 그대에게
이 밤의 편지는 내 생애의 큰 획을 긋는 느낌을 줍니다.
사신이 귀해진 요즈음
내밀의 사변들이 흐르는 유역에 살고 있는 그대를 생각하며
멀리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듯 편지를 쓴다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의 헐벗은 감정들이 이 허름한 여숙 안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얼마쯤 부끄럽고 얼마쯤 송구한 마음입니다.

사명을 발견할 줄 알며
피할 수 없는 목적아래 자기를 통합해 바치고
아낌없는 땀과 눈물 속에
생명과 생애를 바치려는 갈망을 심어놓으신 분

사랑 때문에 목숨을 내놓는
그 무력하고 연약한 사랑을 깨닫게 하신 분

묵언의 깊은 감동을 내 마음에 새겨
영 잊을 수 없게 하신 분

나에게 길이 되신 분

견디는 기쁨
단순한 기쁨으로 그 길을 가려합니다.

첫새벽 어둑한 뜰에 내려서면
거기 밤새워 화초를 보살피던 누군가가
고요히 자리를 일어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나와 그대를 보살펴주시고
당신이 걸어가신 그 길을 가게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밤이 지나고 이제 새벽이 오려합니다.
이젠 나의 입술로 편지를 봉하렵니다.
영육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82 만추의 하늘 아래 만추의 하늘 아래   가을은 사과처럼 빨갛다. 노란 은행잎 주홍의 벚나무와 느티나무 메타쉐콰이어 가로수 길 먼 산의 낙엽송 산골에 피어오르는 파르... 이마르첼리노M 2019.11.16 538
981 거울 하나 있으면 거울 하나 있으면   나를 비춰줄 거울 하나 하느님의 형상인 나를 비춰 줄 정직한 친구 하나 나의 그늘을 보여줄 수 있는 거울 그냥 비춰주기만 해도 좋... 이마르첼리노M 2019.09.12 540
980 행동하는 자비가 육화되는 땅 행동하는 자비가 육화되는 땅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요한 4, 11)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 ... 이마르첼리노M 2021.01.06 540
979 하늘은 네 안에 있다. 하늘은 네 안에 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 가운데는 갓난아이가 첫웃음을 짓는 날 모두 모여 잔치를 벌인다고 한다. 기쁨으로 빛나는 얼굴과 눈빛 아이... 이마르첼리노M 2020.08.21 541
978 내가 없으면 보이는 낙원 내가 없으면 보이는 낙원   가난해지면 보이는 것  프란치스칸 가난이 주는 최고의 열매는 지금 여기서 낙원을 보는 눈이다. 나를 중심으로 하던 모든 것... 이마르첼리노M 2020.09.07 541
977 거리두기 거리두기     서로를 다치지 않게 하고 많은 말이 필요 없는 서로 좋은 이웃이 되려면 거리를 두고 존중하는 것이 더 큰 사랑이라고 코로나가 가르... 이마르첼리노M 2020.06.01 542
976 고난의 땅에 피는 흑장미 고난의 땅에 피는 흑장미   머리로 아는 것은 깊이가 없다. 진실의 바닥을 경험하지 못했거나 고난의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참기 어려운 현실 속에... 이마르첼리노M 2020.09.03 543
975 자유가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 자유가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나서 고를 수 있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영적 은사도 그것을 남들... 이마르첼리노M 2020.07.11 545
974 가난한 운전기사 가난한 운전기사   가난에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하는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가난에 성공할 수 없다. 구원이라고 부르는 성공에 실패했을 때 가난해지... 이마르첼리노M 2019.09.14 546
973 중간고사 중간고사   대립과 모순의 극복은 최대의 과제다 악에 대한 문제를 풀기 위해 나는 내 인생에서 중간고사를 본다.   고난 겪으시며 겸손하신 사랑의 하느... 1 이마르첼리노M 2019.07.30 547
972 새날의 빛으로 새날의 빛으로   지우개로 지우고 새하얀 도화지를 받았다.   점 하나 찍고 첫발로 발자국을 내었다.   만물과 더불어 유려한 가락으로 창조... 이마르첼리노M 2020.01.01 547
971 쓰레기장에 피는 꽃 쓰레기장에 피는 꽃   정상이 아닌 비정상 설명이 안 되는 예외들을 존중할 때 그것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를 존중하라”(마태 25... 1 이마르첼리노M 2019.08.26 548
970 거룩한 바보 거룩한 바보   자신을 옹호하거나 남에게 주장할만한 것이 하나도 없도록 하려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가난이다 자유롭기 위한 선택으로서의 가난은 하느... 이마르첼리노M 2019.09.08 548
969 하느님의 숨 (성령강림 대축일 묵상-창조와 재창조) 하느님의 숨, (성령강림 대축일 묵상-창조와 재창조)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창... 이마르첼리노M 2022.06.09 552
968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마태 12,48)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마태 12,48)   “ 믿는 영혼이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할 때 우리는 그분의 정배들입니다. 하늘에 계신” ... 이마르첼리노M 2021.07.21 553
Board Pagination ‹ Prev 1 ...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 101 Next ›
/ 101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