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
2023년 7월 3일 월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오래된 상처를 다시 헤집다
불경한 손이 입힌 상처를 왜 충실한 제자의 손이 이런 식으로 다시 헤집는 것일까요? 부정한 군사가 창으로 찌른 옆구리를 왜 충실한 추종자의 손이 다시 열려고 할까요? 박해자의 분노가 가한 고통을 왜 종의 잔인한 호기심이 다시 가하려 할까요? 왜 제자가, 그분께서 주님이심을 그분의 아픔으로, 그분께서 하느님이심을 그분의 고통으로, 그분께서 천상의 의사이심을 그분의 상처로 입증하고자 이다지 열심일까요? ...
토마스여, 어째서 저 혼자 영리한 그대만이 믿음을 위한 증거로 상처를 요구히는가? 그 상처들이 다른 것들과 함께 사라졌더라면 어쨌겠는가? 호기심이 그대의 믿음에 어떤 위험을 가져왔겠는가? 그들의 잔인함이 밖으로 드러나게 한 그분의 내장을 그대가 손으로 만져 보지 않으면 그분 부활의 증거도, 그분 헌신의 표시도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형제 여러분, 앞으로는 불경한 자조차도 주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그의 헌신이 이런 일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의 애정이 이런 일을 필요로 했습니다. 토마스는 반신반의하는 자기 마음과 더불어 믿지 못하는 모든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장차 다른 민족들에게 이 가르침을 전할 사람이었으므로 이 성실한 탐구자는 그런 신비에 필요한 믿음의 근거를 제공할 방법을 치밀히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 주님께서 당신의 상처를 그대로 두신 유일한 이유는 당신 부활의 증거로 제시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페트루스 크리솔로구스-
성인 / 영적 글 묵상
50가지 예수 모습 / 안셀름 그륀
45. 부활자 예수
시편 16은 하느님을 마음에 모시고 생활하는 경건한 신앙인의 모습을 그린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눈을 떼는 법이 없다: “주님을 언제나 제 앞에 모시오니 제 오른편에 계시옵기 흔들리지 않으오리다”(시쳔 16,8; 사도 2,25). 또한 그는 하느님에 대한 진한 정이 죽음 때문에 사위어지지 않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하느님의 아들로, 기름부음받은 사람으로 예수님은 하느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셨으니, 이 관계는 죽음도 갈라 놓을 수 없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면서, 우리는 죽어도 하느님과 멀어지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니 우리는 죽음에 머물지 않는다. 더는 죽음이 우리에게 위세 부리지 못한다. 죽음은 하느님과의 영원한 결속에 필요한 통과의례일 뿐이다. 제자들은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부활을 통해 확산했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은 죽음 따위로 파괴되지 않는다.(209)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7월 1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로마 9-13장
<금주간 생태 행동>
생태 돌봄 주간 : 자신. 이웃.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
개인 혹은 공동체 차원에서 먼저 하루를 정해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월요일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의 날
로마 10,5-17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
모세는 율법에서 오는 의로움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들로 살 것이다.”
그러나 믿음에서 오는 의로움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누가 하늘로 올라가리오?’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내려오라는 것입니다.
또 말합니다. “‘누가 지하로 내려가리오?’ 하지 마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모시고 올라오라는 것입니다.
의로움은 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말씀은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 너희 입과 너희 마음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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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 평화 관상 기도의 집
EMTP(Ecology Maria Theotokos Platform)
에페소 평화 관상 기도의 집은 순례와 피정을 통한 에페소 성모님 성지 보존과 중동평화와 생태적 회심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