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존재에 대한 교리는 믿을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두 번의 공의회를 걸쳐서 믿을 교리가 되었는데
놀랍게도 두 번째 공의회는 제 1차 바티칸 공의회입니다.
19세기 후반에 믿을 교리로 재확인 된 것입니다.
이것이 왜 19세기에 믿을 교리가 되었을까?
그런데 믿을 교리가 되었다는 것,
그것도 19세기에 와서 믿을 교리로 재확인되었다는 것 자체가
천사들의 존재에 대해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아진 것의 반증일 것입니다.
실상 천사의 존재에 대해서는 믿지 않는 사람이 많고,
교회가 천사의 존재를 믿을 교리로 선포해야 하는지에 대해
강하게 반론을 펴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교회가 믿을 교리로 선포한 것은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가 존재한다는 것, 그것 뿐입니다.
천사에 대해서 많은 얘기들이 있지만
천사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천사들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유권적 해석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서울 사는 제 군대 친구가
제가 소임을 하고 있는 진주까지 찾아왔습니다.
25년 전이니 진주는 그야말로 “진주라 천리 길”의 그 진주지요.
그 먼 길을 찾아온 것만도 너무 뜻밖인데
찾아온 이유가 너무도 뜻밖이었습니다.
우주에 외계인이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오기 전에 이 친구는
같이 군대 생활했던 목사님도 찾아가 똑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그 목사님은 성서에 외계인에 대한 얘기가 없으니
외계인은 없다고 아주 확언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천주교 신부는 뭐라고 얘기하는지 듣기 위해 온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상한 사람의 쓸 데 없는 관심일 수도 있지만
사실 우주관, 세계관, 인간관과 관련하여 중요한 주제이지요.
저는 “있다, 없다”는 내가 알지 못하고 그래서 단언할 수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얼마든지 그런 존재를 창조하실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저의 작은 앎과 유한한 경험을 가지고
무한하신 하느님의 창조와 섭리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저의 믿음입니다.
하느님은 분명 우리와 다른 또는 우리 이상의 영적인 존재도
만드실 수 있으시고, 만드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이 영적인 존재와 통공을 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천사들과 통공하고,
그리고 천사들과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고,
천사들을 통하여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천사들과 통공하고
하느님 안에서 인간들이 서로 통공하고,
하느님 안에서 산 이와 죽은 이가 서로 통공하고,
하느님 안에서 인간과 피조물이 서로 통공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모든 존재들이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어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중재자가 되고 사신이 되어,
하느님의 뜻을 우리에게 전하고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 올려드릴 것입니다.
이 교리는 두 번의 공의회를 걸쳐서 믿을 교리가 되었는데
놀랍게도 두 번째 공의회는 제 1차 바티칸 공의회입니다.
19세기 후반에 믿을 교리로 재확인 된 것입니다.
이것이 왜 19세기에 믿을 교리가 되었을까?
그런데 믿을 교리가 되었다는 것,
그것도 19세기에 와서 믿을 교리로 재확인되었다는 것 자체가
천사들의 존재에 대해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아진 것의 반증일 것입니다.
실상 천사의 존재에 대해서는 믿지 않는 사람이 많고,
교회가 천사의 존재를 믿을 교리로 선포해야 하는지에 대해
강하게 반론을 펴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교회가 믿을 교리로 선포한 것은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가 존재한다는 것, 그것 뿐입니다.
천사에 대해서 많은 얘기들이 있지만
천사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천사들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유권적 해석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서울 사는 제 군대 친구가
제가 소임을 하고 있는 진주까지 찾아왔습니다.
25년 전이니 진주는 그야말로 “진주라 천리 길”의 그 진주지요.
그 먼 길을 찾아온 것만도 너무 뜻밖인데
찾아온 이유가 너무도 뜻밖이었습니다.
우주에 외계인이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오기 전에 이 친구는
같이 군대 생활했던 목사님도 찾아가 똑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그 목사님은 성서에 외계인에 대한 얘기가 없으니
외계인은 없다고 아주 확언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천주교 신부는 뭐라고 얘기하는지 듣기 위해 온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상한 사람의 쓸 데 없는 관심일 수도 있지만
사실 우주관, 세계관, 인간관과 관련하여 중요한 주제이지요.
저는 “있다, 없다”는 내가 알지 못하고 그래서 단언할 수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얼마든지 그런 존재를 창조하실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저의 작은 앎과 유한한 경험을 가지고
무한하신 하느님의 창조와 섭리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저의 믿음입니다.
하느님은 분명 우리와 다른 또는 우리 이상의 영적인 존재도
만드실 수 있으시고, 만드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이 영적인 존재와 통공을 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천사들과 통공하고,
그리고 천사들과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고,
천사들을 통하여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천사들과 통공하고
하느님 안에서 인간들이 서로 통공하고,
하느님 안에서 산 이와 죽은 이가 서로 통공하고,
하느님 안에서 인간과 피조물이 서로 통공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모든 존재들이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어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중재자가 되고 사신이 되어,
하느님의 뜻을 우리에게 전하고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 올려드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