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장이 죽은 딸을 위해 예수님께 청합니다.
회당장은 예수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치유 이야기도 들었겠지만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들과 논쟁하신 부분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회당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율법 학자들의 생각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께 청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딸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평소에는 크게 상관이 없지만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낄 때
피곤해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그럼에도 나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사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그 사랑 때문에 움직입니다.
수도원 안에서 소임을 하고
사회에서 직장을 다니는 것도
나를 위한 것이고
내 옆의 형제 자매, 또는 가족을 위한 것입니다.
나에게 맡겨진 소임이니까
돈을 벌어야 하니까 하는 것도 있습니다.
여러 목적과 이유가 그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사랑이 차지하는 비율은
적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랑을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먼저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은 나를 움직이게 하고
하느님도 움직이게 합니다.
회당장의 사랑은
예수님의 치유 기적을 일으킵니다.
나를 사랑할 수 있을 때
주위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 때
하느님께서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내가 움직이는 순간마다
그 행동 안에도
나를 향한 사랑, 주위 사람들을 위한 사랑이
작용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