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오늘도 하늘나라에 관한 비유입니다.
첫째 비유는 겨자씨의 비유로서
겨자씨는 하늘나라인데 어떤 사람이 그 씨를 자기 밭에 뿌린다는 비유입니다.
이 비유의 세 요소는 ‘어떤 사람’과 ‘겨자씨’와 ‘자기 밭’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사람’이라고 하심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겨자씨 곧 하늘나라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에게도 주어지고 너에게도 주어지는 것으로서
누가 심든 주어지는 대로 겨자씨를 심기만 하면
그 씨는 크게 자라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씨가 중요합니다.
사실 씨란 겨자씨뿐 아니라 모든 씨가 작고,
작지만 크게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관건은 겨자씨 곧 하늘나라라는 씨를 뿌려야 하는데
어떤 사람이 자기 씨를 뿌린다거나 악마의 씨를 뿌린다거나
욕망이라는 씨를 뿌릴 경우, 그때가 문제이고, 그 사람이 문제입니다.
자기 씨를 뿌리면 자기가 자기 안에서 크게 자라날 것이고,
악마의 씨를 뿌리면 악이 자기 안에서 크게 자라날 것이며,
욕망이라는 씨를 뿌리면 욕망이 자기 안에서 크게 자라날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밭’이 자기 마음일 수도 있지만
자기 교회나 자기 사업이나 자기 계획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 교회에 자기 씨를 심으면 자기 교회는 하늘나라로 성장하지 않고,
자기 소유의 나라가 되고 말 것이고 자기 교회가 대형 교회가 될 것입니다.
제가 볼 때 개신교 많은 대형 교회가 이런 식으로 커진 교회이고,
가톨릭의 경우엔 성당이 사제 개인의 소유는 아니지만
본당이 하느님 중심의 하느님 나라가 자라게 하는 사목이 아니라
자기가 왕인 양 자기중심의 사목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겨자씨 곧 하늘나라의 씨앗을 뿌리는 사목이 아닌 겁니다.
자기 사업이나 계획도 하느님 사업이나 계획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식당에 가면 네 시작은 미미하나 그 끝은 창대하다는 성경 구절을
달아놓곤 하는데 이처럼 자기 사업이 번창할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협동조합과 식당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제게 이 사업이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 방송을 타면 좋겠다고도 하십니다.
저도 그런 마음이 없지 않고 그래서 그것이 유혹으로 다가올 때도 있는데
저는 그것을 항상 경계하고 그럴 때마다 단호하게 끊어버립니다.
프란치스코가 세운 작은형제회의 작은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작은형제회가 자기 수도회가 될까 봐 조심하였고,
작은형제회가 큰 수도회가 될까 봐 더 조심하고
그래서 형제들의 수가 갑작스럽게 늘어나는 것도 걱정했습니다.
사실 수도회가 큰 것이 중요하지 않고 복음적인 것이 중요하고,
형제들의 숫자가 많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한 명이라도 프란치스칸다운 프란치스칸이 있는 것이 좋겠지요.
제가 가끔 얘기하듯 저와 같은 사람 수만보다
프란치스코 성인 한 분이 세상을 진정 복음화하잖습니까?
그러므로 우선 내 안에,
다음으로 우리 공동체에 복음의 겨자씨를 뿌리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