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의 나눔은 어쩌면 오늘 주제와 조금 동떨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사랑의 등급이랄까, 성숙한 사랑과 미성숙한 사랑의 차이랄까,
이런 것들과 관련한 얘기를 나누는 것에서부터 오늘 나눔을 시작할까 합니다.
성숙한 사람, 행복한 사람은 성숙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고,
미성숙한 사람, 불행한 사람은 미성숙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라고
단정적으로 얘기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제일 미성숙한 사람, 제일 불행한 사람은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실은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다음으로 미성숙하고 불행한 사람은 자신만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다음은 자기 가족만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다음은 자기 민족만 사랑하는 사람이고,
성숙하고 행복한 사람은 모든 인간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고,
더 성숙하고 더 행복한 사람은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랑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자기부터 사랑해야 하고,
자기부터 사랑하는 것이 순서로 맞습니다.
자기만 사랑하는 사람은 가족 사랑도 이웃 사랑도 못하지만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가족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고,
뒤집어 얘기하면 자기를 사랑치 않는 사람은 가족과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자기를 사랑할 때 사랑의 토대가 놓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하느님 사랑 체험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계속 느끼는 사람이라야
자기를 진정 사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렸을 때 부모 특히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받은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엄마의 사랑을 제때 받지 못한 사람에게 애정결핍이란 것이 있고,
애정결핍이 있을 때 자기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이웃도 사랑하지 못하며,
반대로 엄마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애정결핍이 없을 때
자존감과 함께 진정한 자기애가 가능하게 되고 이웃 사랑도 가능하게 되지요.
그런데 엄마의 사랑보다도 더
자존감과 자기 긍정과 자기 사랑의 근본이 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은 하느님 사랑 체험이 근본적으로 없을 때 우리는 자기가 버림받은 존재,
없어도 되는 존재, 잉여 인간이라는 자기 비하감이 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성숙하고 행복한 사람이라면 자기 사랑에서부터
가족 사랑과 이웃 사랑과 인류 사랑으로 사랑이 점차 확장되기 마련인데
자기 사랑의 근본이요 이 모든 사랑의 근본이 바로 하느님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민족을 다 당신 사랑 안으로 초대하는 사랑인데
모든 민족을 당신 사랑 안으로 초대하기 위한 도구로,
초대장으로 먼저 뽑으신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이라는 것이 오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이스라엘 족속이 바로 우리이고 나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 하느님 자녀가 된 것은
다른 사람을 그리고 모든 민족을 하느님 사랑 안으로 초대하라는 뜻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먼저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사야서 말씀처럼 하느님의 집 곧 우리 교회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으로 불릴 수 있도록
가서, 모든 민족을 초대하는 초대장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신부님 오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