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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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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The Road to Jerusalem, 1877)

   가 :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 1832-1883)
   기 : 판화 48X60cm

소재지 : 개인소장





   작가는 불과 5세 때부터 판화에 대한 대단한 재능을 드러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불가사의한 천재라는 칭송을 들으며 성장해서 15세 때 이미 스케치북을 출판하면서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신문이나 잡지의 삽화 제작에 있어 소년 잡화가의 작품이라는 것이 발표되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만큼 참으로 대단한 인기 스타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의 대단히 왕성한 활동으로 제작된 작품 일부는 본의 아니게 어떤 일부 사람들로부터 비판받기도 했으나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고 결과 많은 작품을 팔아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이렇게 작가로서 승승장구의 길을 걸으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많은 작품을 남기고 성공한 예술가로서 결혼도 하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어머니가 죽자, 삶의 생기를 잃고 50세 나이에 안타깝게도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는 작품도 낭만적인 것으로 표현했지만 삶 역시 낭만적인 삶을 살았다.

예술가의 길은 가난으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그의 작품이 사람들의 호응과 사랑을 받으면서 많은 돈도 모을 수 있었고 프랑스인들의 최고 영예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Ordre national de la Légion d’honneur)도 받을 만큼 행운이 삶을 살았다.

또한 그는 외경을 포함해서 신구약 전체를 그림으로 된 성서를 만들면서 당시 가톨릭 교리 교육에 대단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사실 변변한 교리 교재가 없던 당시에 그의 작품은 대단히 효과적인 인기를 끄는 교리교재가 될 수 있었다.



그의 성서를 주제로 한 판화 작품들은 예술성을 뛰어넘어 당시에 꼭 필요한 복음화 도구로서의 대단한 역할을 하게 되었고 이것은 누구 뭐라 해도 가톨릭 신자로서 교회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앙 교리를 말로써 설명하는 것 외에 다른 수단이 없던 당시 교리교육에 그가 제작한 성화들은 극적이며 대단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선교 수단이 되었다

사실 현대적 의미의 시청각 교재가 교회에 시작되기 전까지 작가의 성서를 주제로 한 작품들은 교회 안에서 거의 독보적인 수단으로 활용되어 복음화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교회 역사에 관한 작품에 관심 가지면서 단테의 신곡과 십자군 전쟁에 관한 작품을 남기게 되었다.

이것은 당신 사람들의 신앙과 무관한 인문학적 관심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킨 것이며 단테의 신곡에서는 특히 지옥 편에 대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십자군 전쟁을 주제로 당시 이슬람교도들에게 정복당하고 있던 예루살렘 성지 회복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약 200년 동안 8차례에 걸쳐 시도된 십자군의 파병은 종교적인 의도에서 그리스도교가 시작한 것이지만 참으로 비 복음적이고 부끄러운 전쟁이었다.



오늘 교회는 이것을 교회가 저지른 부끄러운 일로 여겨 세상에 사과한 내용이나 당시에는 십자군이라는 낭만적 표현으로 여기면서 신앙의 표현으로 여겼다는 것이 교회가 생각해야 할 면이다.



현대에서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이슬람교도 외의 사람들에게는 그의 달갑지 않은 종교이며 어떤 곳에서는 종교 자유라는 표현과는 무관하게 이슬람에 대한 강한 혐오와 두려움이 있는데 이것은 이슬람교도들의 신앙 표현인 성전(聖戰)이란 뜻의 지하드 때문이다.

사실 우리 교회는 중세기에 200년 동안 십자군이라는 성전을 일으켜 많은 사람을 전쟁의 공포 속에 몰아넣은 종교였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성전의 원조 집단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작가도 이 작품을 제작할 때는 성지를 수호해야 한다는 열망으로 시작된 것이고 더욱이 이런 장한 일을 하느님이 축복하셨다는 긍정적인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사실 세월이 흐르고 인간들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면서 인간 삶을 파괴했던 전쟁 중에 종교 전쟁만큼 무의미한 것이 없고 잔인한 것이 없다는 것이 인지되면서 세상은 교회를 향해 사과를 요청하게 되었고 삼천년대를 시작하면서 교황님이 온 세상을 향해 사과한 중요한 실수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교황님의 사과로 다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 우리 신앙의 순수성을 키우기 위해 크리스천들은 교회 교리 못지않게 이 역사적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한다.



이런 면에서 이 작가의 작품은 십자군의 실상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로마사 전체를 쓴 일본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그의 저서 『신의 대리인』의 서문에서 십자군 전쟁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지나친 금욕은 흔히 광신의 온상이 된다.
금욕생활로 몸은 수척해지지만 상상력은 오히려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모두 정의라고 믿고, 자신이 믿는 것은 모두 신의 계시라고 확신하게 된다.” (시오노 나나미 - 『신의 대리인』 11쪽)




이 견해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러 종교 지도자의 공통 현실로 나타나고 있으나 특히 교황직을 시작으로 강한 제도를 지닌 우리 교회는 이 말을 오늘도 귀담아들어야 할 만큼 성직자들이 자기의 뜻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허구적 착각으로 많은 순간 교회에 상처를 남길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십자군의 시작은 당시 교회의 개혁 세력이었던 클뤼니(Cluny) 수도원 출신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수도 생활 자체가 해이하고 부패한 교회에 소금 역할을 한 개혁 세력이었듯이 클뤼니 수도원은 당시 부패한 교회의 자정(自靜) 세력의 중심에 있던 집단이었다.

중세기에 있었던 부도덕한 교황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당시 교회의 최고 청렴 기관의 상징인 클뤼니 수도원 출신의 교황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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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뤼니 수도원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성지 순례를 끝내고 돌아온 피에르라는 수도자로부터 성지에서 순례자들이 이슬람교도로부터 겪고 있는 참상을 듣고 성지 탈환 전쟁을 구상해서 1095년 11월 27일 프랑스 클레르몽에서 시작된 공의회에서 십자군 창설을 제의하자 거의 다수의 지지로 가결된다.



교황은 시작 연설에서

“하느님이 그것을 원하신다. 이것이야말로 성령이 내린 계시이고,
가까운 장래에 너희들의 승리의 외침이 될 것이다.”




이런 교황의 강론은 오늘 우리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삼류 개신교 부흥사의 정신 나간 설교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게 된다.



“하느님이 그것을 원하신다”라는 함성 속에서 십자군의 열기는 걷잡을 수 없이 유럽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참가자들의 모병 방법이었다.

그 먼 예루살렘까지 걸어가는 전쟁에 참석할 사람을 구하는 것은 흥분한 열기만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당시 교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도 열렬한 강론으로 많은 지원자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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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그런데 역시 시오노 작가가 지적한 것처럼 이 성인 역시 너무도 철저한 금욕적 삶에서 생긴 맹목적 신념의 표현을 사용해서 많은 지원자를 모았다.

이것은 현대에선 참으로 얻어지지 않는 것인데, 성인 베르나르도가 이슬람교도 하나를 죽이면 직천당이라는 강론이 큰 효과를 내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지를 회복하기 위해선 이슬람교도를 죽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란 강론이었다.

또한 모병의 수단으로 교회가 죄에 대한 공포를 강조하는 것도 일조하게 되었다.

중세기 수도자들은 경건한 삶에 대한 강조로 인간의 죄의식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여러 수도회의 열심한 수도자들이 신경질적으로 죄와 징벌을 강조하면서 교회법에다 새로운 죄에 대한 것을 삽입하면서 죄의 벌은 눈송이처럼 불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중세기 신자들은 일생을 교회가 규정하는 죄에 대한 두려움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다.

중세기에 살인과 같은 행위를 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도 지은 죄를 보속하기 위해선 대강 300년 보속을 해야 했는데, 당시 사람들의 수명이 50세였으니 일생을 죄에 대한 공포에 시달려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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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에 칼을 왼손에 승리의 깃발을 든 천사가 구름처럼 모인 군인들 위에서 십자군병들을 바라보고 있다.



칼과 승리의 깃발을 든 천사는 교황이 외쳤던 “하느님이 원하신다”는 것의 상징적 표현이다.



구름같이 끝이 보이지 않게 모인 군인들은 이슬람교도와 싸워 성지를 탈환해야 한다는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결심으로 가득 차 있다.



십자군 전쟁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며 그러기에 하느님께서 극적으로 이들을 보호하신다는 강한 확신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의 하느님이 동반하시면 도와주셨단 감동적인 정황을 상기시킨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밤낮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그들 앞에 서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 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그들을 비추어 주셨다.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을 떠나지 않았다.”(탈출 13,21-22)




작가 생존 당시에도 이 주제는 낭만적으로 표현되면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던 주제였기에 이 작품을 100개 이상 복사해서 보급할 만큼 인기 있던 작품이었다.



교회가 세상을 위해 사과할 만큼 십자군 전쟁은 교회 편에선 수치스러운 전쟁이었으나, 이 어리석은 전쟁에 참석한 맑은 마음의 크리스천들이 만든 미담 역시 기억되어야 한다.



당시 십자군을 돕기 위해 시작된 성전 기사단이라는 십자군 전쟁으로 다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병원을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크리스천뿐만이 아니라 이슬람교도들도 치료해 주었다.



십자군에 참가했던 군대 장교들은 대부분 프랑스 출신의 귀족 자녀들이었는데 이들은 전쟁에 참여하면서도 은식기를 가지고 와서 입원 환자들에게도 은식기로 대접했는데 이것은 환자들이 독살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치였으며 이 병원 시설은 당시 유럽 어디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대단한 시설이었다.

생명을 죽이는 전쟁터에 이런 대단한 의료시설이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교회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십자군 전쟁에 줄곧 참여했고 나중에는 포로가 되어 많은 몸값을 지불하고 돌아온 루이 9세 성왕(聖王)은 프랑스인들의 고귀한 인품의 모델로 존경받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아랍 측 최고 사령관이었던 살라딘과 그리스도교 사령관인 영국의 리처드 1세 왕은 전쟁터에서도 서로 원수가 아니라 신사다운 모습으로 상대방을 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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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도레의 "살라딘"



리처드 왕이 병이 나을 때 살라딘은 자기 주치의를 보내 리처드 왕을 치료해 줄 만큼 그는 크리스천들에도 고귀한 인품으로 존경받는 왕이었다.



애초 시작부터 복음과 거리가 먼 전쟁을 일으킨 교황의 잘못을 하느님이 징벌하셨는지 십자군은 초기에는 승리해서 예루살렘을 차지했으나 그때 아랍인들에 대한 잔인한 살육으로 인심을 잃고 어이없는 참패를 하게 되고 나중에는 소년 십자군이란 어린이들까지 동원했으나 싸워 보지도 못하고 이들 모두가 노예로 팔린 비참함으로 십자군 전쟁은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작가는 십자군을 정의를 위한 전쟁으로 하느님이 함께했던 성전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을 작품화했으나 뭣보다 여기에 칼과 승리의 깃발을 든 천사는 교회의 모습이 아니고 교회의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현대인들에게 교회가 반성해야 할 점을 알리고 있다.

현대에선 이런 십자군과 같은 일을 교회가 저지를 힘도 없고 세상도 교회의 이런 야만적 신앙 표현을 용납하지 않는다,



격언에 인간 역사에서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표현이 있다.

이 작품은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비판할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필요한 교회의 복음적 처신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리는 좋은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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