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는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도 베드로를
시몬이라는 이름에서 베드로로
바꾸어 부르십니다.
그러시면서 반석, 돌이라는 이름에 맞는
새로운 역할을 그에게 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을 알아가는 것과
나를 알아가는 것이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고백하기에 앞서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아야합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는 고백은
하느님을 살아 계신 분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내가 만들어 놓은 하느님 모습으로
굳히는 결과를 가지고 오기도 합니다.
여기에서의 어려움은
나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내가 만들어 놓은, 내가 꾸미고 싶은 나의 모습이
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하느님을 온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위해 기도를 하고 미사를 드립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하느님을 발견하려고
노력합니다.
즉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
하느님과 관계를 맺습니다.
한 사람과 친해지고 가까워지기 위해서
자주 만나고 자주 대화하는 것처럼
하느님과도 그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하느님만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심리학이나 철학을 통해서
아는 것과 다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가 살아가게 해 주시는 분이시기에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허공에 집을 짓는 식으로
바탕이 없거나 뜬 구름 잡는 식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근원인 하느님이 없는 상황에서
나를 알아가는 것과
하느님과 관계를 토대로 나를 알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
나를 찾아가는 길,
나로서 살아가는 길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위해 하느님이 누구이신지도
함께 찾아야 합니다.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나 자신이 누구인지
이 세상에서 온전히 알 수는 없을지라도
그리고 그 길이 쉽지는 않을지라도
그 길은 우리에게 소소한 행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