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사도는 오늘 영적 지혜와 깨달음에 관해 얘기합니다.
그런데 지혜와 깨달음에는 영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생활의 지혜나 삶의 지혜도 있으며 이런 지혜는 보통
깨달음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 곧 깨달음의 결실입니다.
버리는 것을 가지고 유용한 것을 만드는 것과 같은
생활의 지혜가 있으면 얼마나 삶에 유익이 많겠습니까?
우리 가운데서는 이렇게 지혜가 뛰어난 분이 많습니다.
저도 주방에서 같이 일하시는 분도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정리가 잘 되어 있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사람인데
얼마 전 한 분이 팔을 걷어붙이고 정리하니 순식간에 깔끔해졌습니다.
그야말로 모두가 깜짝 놀랄만한 정리의 달인이요 생활의 지혜가 있는 분이셨지요.
그런가 하면 인생의 지혜를 갖춘 사람도 많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욕심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
욕심을 버리고 심신이 건강하게 사는 것이 최고라는 지혜를,
모든 걸 잃어도 사랑을 얻고 사람을 얻는 것이 제일 값진 것임을
깨달은 결과 사랑도 얻고 행복도 얻는 지혜를 갖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깨달음과 지혜란 어떤 것입니까?
여러 가지로 얘기할 수 있겠지만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따르면
하느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영적인 지혜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면에서
주님 마음에 들고 이웃에 대한 온갖 선행으로 열매 맺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며 간청하고 있습니다.
곧 여러분이 모든 영적 지혜와 깨달음 덕분에 하느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지고 그 지식이 자라기를 빕니다.”
그러면 이런 영적인 깨달음과 지혜는 어떻게 얻습니까?
이것을 우리는 오늘 베드로 사도의 하느님 체험과 연결해 볼 수 있겠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고기잡이의 달인입니다.
고기 잡는 데 지혜가 많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의 생활의 지혜가 그날은 아무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타나시어 치라고 하시는 대로 그물을 치니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사실 주님께서 그물을 다시 치라고 하셨을 때
달인인 내가 밤새도록 애썼는데도 안 되니 싫다고 거절할 수도 있었는데
전날 자기 장모를 예수께서 치유해주신 것을 봤기에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하고 그물을 칩니다.
그리고 예수의 무한한 능력을 보고 자기의 한계를 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유한함을 깨닫고 더 나아가 자기가 죄인임을 깨달으며
동시에 예수는 스승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주님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스승이던 예수님 호칭이 주님으로 바뀌고,
죄인이니 떠나가 달라던 그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주님 뜻을 따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인 지혜는 영적인 깨달음을 통해서 얻는 것이고,
영적인 깨달음은 영적인 체험을 통해서 얻는 것이며,
영적인 체험은 자기의 인간적인 힘과 지혜로 한 일들이 좌절되고
그 좌절로 인해 오히려 하느님을 만나게 될 때 하게 되는 겁니다.
인간적 좌절-영적인 체험-영적인 깨달음-영적인 지혜의 순서가 성립됨을
배우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