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이번 한국 순교 성인 대축일에는 궤변일지도 모르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순교 성인들처럼 꼭 순교해야 하나?
배교한다고 해도 하느님을 배신하는 것은 아닐 수 있지 않은가?
박해상황이 되어 또는 북한에 살게 되어 천주교를 믿지 말라고,
믿으면 사형에 처한다고 하면 굳이 믿겠다고 할 필요가 있을까?
겉으로는 안 믿겠다고 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되지 않는가?
입으로 안 믿는다고 해도 내가 하느님을 믿으면 되지
굳이 믿는다고 하여 죽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하면
오늘 축일로 지내는 성인들 가운데 대표 성인인 정하상 바오로 성인의 가문을 보면
아버지 형제 가운데 아버지 정약종과 가족은 모두 순교하였지만 정약전과 정약용은
배교를 선택하여 죽임을 당하지 않고 유배 가 정말로 위대한 업적을 많이 남겼는데
지금에 와서 정약용이 천주교를 완전히 떠난 것인가, 하느님을 믿지 않은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가운데 우리 가톨릭은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옹호하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그리고 입으로 배교했다고 하느님을 버린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하고,
사실 많은 신자가 순교하지 않고 산속으로 피신하여 신앙생활을 이어간 것은
입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신앙을 증거 하지 않았다는 면에서는 같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 가운데 배교 후 교회를 파괴까지 한 완전한 배교자를 빼놓고,
나머지는 두 부류 곧 신앙을 ‘이어온 신자’와 ‘증거 한 신자’ 두 부류이며,
오늘 우리가 기리는 성인들은 그 가운데서 적극적으로 증거 한 분들이고,
대표 성인인 정하상 바오로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적극적인 분이셨습니다.
정하상 바오로는 6세 때 아버지 정약종과 형 정철상이 먼저 순교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친척들까지
그의 가족이 천주교를 버리도록 “비난, 협박, 멸시, 조소, 심지어
학대까지도 모두 동원되었다.”라고 달레의 한국 천주교 교회사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때 이것을 개인의 불행을 넘어 가족의 불행이라고 생각했으면 배교했을 텐데
정하상 바오로와 가족들은 그것을 가문의 영광이요 영광의 기회라고 생각했으며,
그랬기에 그는 20대 젊은 나이에 한국교회의 중심이 되어 대단한 활약을 펼칩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한국교회를 설립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설립하기 위해서 그는 1825년 조선의 독립적인 교구 설립을 요청하는
편지를 교황청에 보내어 1831년 마침내 조선 교구가 설립되게 하였으며,
성직자들을 모셔 오기 위해 2,000km의 북경 길을 여러 차례 왕복하였고,
그래서 조선 교구 2대 주교인 앵베르 주교와 모방과 샤스땅 신부를 영입했습니다.
그의 업적 중에 ‘상재상서’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글이 어쩌면 한국교회 최초의 교리서 또는 신학 저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글에서 천주교가 어떤 교인지 보유론과 호교론적인 입장에서 역설하였습니다.
이런 그를 앵베르 주교는 신학 교육을 속성으로 시키고 사제품을 주려고 했으나
1939년 기해박해로 그가 순교하게 되어 그는 한국교회의 첫 신학생이 된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그것은 김대건, 최양업, 유방제의 신학생 선발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정하상 바오로와 적극적으로 하느님과 신앙을 증거 한 순교 성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오늘 우리 자신의 신앙이 어느 정도인지 돌아봅니다.
근근이 이어가는 신앙인지,
적극적으로 증거 하는 신앙인지,
하느님으로 행복하고 그 행복을 전하는 신앙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