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오늘 주님의 말씀과 관련한 비유를 묵상하면서 이런 성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인가?
이에 대해 저는 좋은 땅이 되어가고 있다는 성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주 옛날의 저는 그리 좋은 땅이 되지 못했습니다.
특히 사제가 되고 또 인터넷에 매일 강론을 올리기 시작한 뒤부터는
제 마음이 길바닥과 같아서 강론하기 위해 주님 말씀을 묵상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열매가 제 강론을 들은 분들에게는 맺어졌는지 모르지만
제 안에서는 그리 많은 열매를 맺지 못했던 것만 같습니다.
이는 마치 옛날 엄마가 이유식을 아기에게 먹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요즘은 이유식이 잘 나와서 그것을 아기에게 먹이지만
옛날에는 엄마가 거친 음식을 곱게 씹어서 아기에게 주고 자기는 먹지 못했잖아요.
그런데 몇십 년을 그래도 말씀과 함께 살아오다 보니
말씀이 점점 제 입에서 더 맛있어지고 여러분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차츰차츰 저를 위한 말씀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제가 인터넷에 강론을 올린 지 15년이 넘다 보니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말씀이나 새롭게 깨닫게 되는 말씀은 그리 많지 않지만
밥을 오래 씹으면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게 되듯 말씀도 그리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는 좋은 땅이라기보다는 좋은 땅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이참에 좋은 땅이란 어떤 것인지 오늘 루카 복음에 비추어 성찰하렵니다.
루카 복음은 다른 복음이 말씀을 그저 듣는 것으로 얘기하는 것에 비해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듣는 것을 좋은 땅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듣는 것을 강조하는 겁니다.
여기서 착한 마음으로 듣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순종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지요.
어른의 말을 어린이가 잘 들을 때 착하다고 하듯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마음 없이 잘 듣는 것이 착한 마음입니다.
이것은 공자가 나이 60을 이순耳順이라고 한 것과 같은 마음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바른 마음이란 어떤 마음일까요?
바른 마음의 반대가 혹 삐딱한 마음 아닐까요?
마음이 비뚤어져 있기에 그 뜻을 말씀하신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식으로 또는 자기 입맛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왜곡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른 마음으로 듣는 것은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간직하는 땅이 좋은 땅입니다.
모래밭처럼 물이 빨리 빠져나가지 않고 물기를 오래 간직하는 땅입니다.
이것은 오늘의 말씀을 한 번 들은 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 말씀을 하루 내내 묵상하는 것으로 이는 소나 초식동물들이
시간이 날 때마다 위에 있는 풀을 되새김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많이 되새김질할수록 풀에 있는 모든 영양분을 다 흡수하듯
오래 간직할수록 하느님 말씀의 모든 가르침을 다 깨닫겠지요.
다음으로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땅이 좋은 땅입니다.
말씀을 듣고 간직할 뿐 아니라 인내한다는 것입니다.
달콤하면 오래 간직하고 인내할 필요가 없을 텐데
인내해야 한다고 하니 그 말씀이 달콤하지 않다는,
그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괴롭다는 말이겠습니다.
즉시 떠오르는 것이 한여름이나 요즘 뙤약볕의 벼입니다.
벼가 뙤약볕의 고통을 마다하면 열매를 맺지 못하겠지요.
하느님 사랑의 말씀도 뙤약볕 같습니다.
하느님 사랑이 본래 뜨겁고 괴롭습니다.
그 사랑을 견뎌야 내 안에서 사랑이 열매 맺고,
그 사랑이 이웃에게서도 열매 맺습니다.
내일은 제가 강론을 올릴 수 없겠습니다.
그래서 월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