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
2023년 10월 13일 금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루카 11,24-26)
우리가 믿기 전에는 더러운 영이 우리 안에 살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오기 전에는 우리 영흔이 여전히 하느님을 거슬러 간음을 행했고 마귀들을 사랑했습나다. 그 뒤 영혼은 “첫 남편에게 되돌아가야지"(호세 2,9) 하고는 애초에 저를 ‘당신 모습으로’ 지으신 그리스도께로 왔습니다. 간음하던 영은 합법적인 남편을 보자 자기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내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주셨고, 우리 집은 이전의 죄가 모두 깨끗이 치워졌습니다. 그 집은 입교한 이들이 아는, 믿는 이들의 성사들이 가구로 채워졌습니다. 그러나 그 집은 거기 사는 이의 삶이 거룩하고 순결하여 두 번 다시 더럽혀질 수 없는 ‘하느님의 성전’이 되기까지는 아직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셨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곳은 더 이상 그냥 집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시는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받은 은혜를 소홀히 하고 세상일과 그것을 뒤섞으면 곧바로 더러운 영이 돌아와 그 집을 차지할 것입니다.
-오리게네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본서의 목적과 특징
엑카르트의 영적 여정을 따르는 네 개의 오솔길은 엑카르트 자신의 표현과 신학에서 따온 것들이다. 이 오솔길들이 본서를 네 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나는 엑카르트의 셜교들과 주석들 그리고 논문들에서, 이 오솔길들에 대한 그의 통찰을 가장 잘 제시한 것처렴 보이는 것들을 선정했다. 나는 설교들의 순서를 신중하게 배열했다. 내가 설교들에 붙인 제목들과 주석들에 달아 놓은 부제들은 엑카르트의 표현과 경험에서 나타나는 점층적인 성장 과정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엑카르트의 설교들에 새로운 제목을 붙이는 과정에서 블레크니의 전례를 따른 것도 있다. 그가 제목을 엉망으로 달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는 하지만. 나는 제목들과 부제들을 가급적이면 엑카르트의 말 자체에서 직접 따오려고 했으며, 언어의 발달로 인해 여의치 않은 곳에서는 그의 영성신학에서 직접 따오려고 했다. 나는 15세기 이래로 엑카르트를 주해한 그리스도교 최초의 영성신학자다. 때문에 나는 엑카르트의 설교들과 주석들에 제목을 붙여 독자들에게 방향을 제시한 것에 대하여 사과할 마음이 없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인 셈이다. 나는 엑카르트와 나의 손을 잡고서 이 여행올 떠나는 사람은 액카르트를 맛들이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풍부하게 대변하는 창조 영성 전통까지도 맛들이게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다시 한 번 성서에 바탕을 둔 창조 중심 영성을 여행하고자 하는 진지한 학생들을 돕기 위해 색인 - 성서 구절 색인과 영성과 관련된 주제 색인 - 을 제시했다.(33)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10월 2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1코린 9-16장
금주간 생태 행동
<생태 아낌 주간>
물.전기.자동차.구매와 소비
개인 혹은 공동체 차원에서 먼저 하루를 정해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금요일 성인의 날
영적 삶의 샘(디다케에서 아우구스티노까지), 요한 봐이스마이어 외 지음
체사레아의 바실리오
감사에 대한 강론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므로 울고 있는 사람은 주님의 눈물을 자신들이 마음껏 울어도 되는 것으로 악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음식을 드셨다는 사실로 우리가 흥청망청 사치를 부려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주님의 예는 오히려 절제와 알맞은 양에 대한 명백한 선을 제시합니다. 그분의 눈물은 마음껏 울어도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알맞은 양과 정확한 규칙을 알려주어, 우리가 자신의 본성이 가진 경계선을 존중하면서 품위를 지키고 슬픔을 알맞게 드러내는 것을 배우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긴 시간 동안 지나친 방법으로 슬퍼하는 것은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일어난 불행한 일에 대해 적당한 양으로 슬픔을 표현해야지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큰 소리로 울부짖거나 옷을 찢거나 재를 뒤집어쓰거나 그 외 천상 세계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행하는 방법을 따르거나 하지 않고 조용히 해야 합니다.
천상의 가르침으로 정화된 사람은 건강한 이성으로 강하게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튼튼한 성 안에 있는 사람처럼, 세상 고통의 폭풍이 몰아쳐 와도 잘 물리쳐 냅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마치 구덩이 속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가듯이 낙담한 모습으로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지 않은 채 지나치게 낙담하고 기운을 잃으며 시험에 빠져 드는 것은 사내 대장부의 영혼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는 표시입니다. 벌레들이 부드러운 나무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 것과 같이 슬픔도 유약한 마음속에 더 잘 자리잡습니다.(170)
----------------------------------
에페소 평화 관상 기도의 집
EMTP(Ecology Maria Theotokos Platform)
에페소 평화 관상 기도의 집은 순례와 피정을 통한 에페소 성모님 성지 보존과 중동평화와 생태적 회심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