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이루신 하느님의 선을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거부하기 위한 합당한 이류를 찾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마귀 우두머리의 힘으로
그것을 했다고 하거나
다른 표징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것을 원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되는데
꼭 이유를 찾습니다.
자신들이 거부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핑계를 대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자발적으로 예수님의 기적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자발적으로 거부하지도 않습니다.
그 모습은 그들을 모순으로 빠지게 만듭니다.
예수님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들들도
마귀를 쫓아낼 수 있었는데
예수님의 기적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다보니
자신들의 아들들의 기적도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너 때문이라는 이유를 찾고 싶은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잘못 때문에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상대방에게서 원인을 찾는 삶은
내 삶이 아닙니다.
내가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다는 회피의 삶입니다.
내가 없는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자신들의 아들들을 보면서
그들의 기적을 함께 기뻐해야 하는데
모순에 빠지면서 기뻐할 수 없게 됩니다.
너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나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다르게 말하면
너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내 마음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나를 호의적으로 대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내가 없는 삶으로
내 삶의 모든 것이
너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을 원합니다.
그리고 나 스스로 그 행복을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무심할 수는 없지만
그것에서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나의 행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