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 어머니가 부럽다는 여인의 말을 듣습니다.
이는 주님의 말씀이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을 정도로
대단한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말씀이었기 때문일 것이고,
이런 아들을 두면 자기도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주 제주 지구 회원들의 서약 피정을 동반하고 강의도 했는데
다른 어느 곳보다 반응을 잘해 주셔서 저도 열과 성을 다해 강의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인지 제가 생각하기에도 강의가 잘 됐고 회원들도 만족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강의가 좋았다고 인사해주시고,
심지어 제가 존경스럽다는 말씀까지 하셨는데
그들도 이 여인처럼 저의 강의로 힘을 얻고 행복감도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고마움을 표현할 때 그저 고맙다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오늘 복음의 여인처럼 저의 어머니가 참 행복하시다고,
그래서 부럽다고 표현할 수도 있고 그러면 더 멋스러울 수 있을 겁니다.
아무튼 주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아들을 잉태하는 것보다 하느님 말씀을 잉태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뜻이지만
이 말씀이 오늘 저에게는 이렇게 들립니다.
좋은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겠지만
듣고서 그것을 실천까지 해야 더 행복할 것이라고.
또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들었으면
듣기만 하지 않고 그 사랑을 실천할 때 진정 행복하다고.
말씀을 듣는 것은, 씨앗이 내게 떨어진 것과 같다면
실천하는 것은, 그 씨앗이 열매를 맺는 것과 같지요.
사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만도 행복합니다.
하느님 말씀 듣고 걷어차는 이들과 비교하면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만도 행복하다고 해야겠지요.
그러나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보다는
말씀대로 실천할 때 더 행복하겠지요.
말씀을 듣는 것은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니 말입니다.
그래서일까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야고보 사도는 아주 강력하게 말하지요.
그런데 듣기만 하는 것이 왜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마 상상 임신과 같을 것입니다.
들은 것만으로 이미 그리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을 이렇게 비유합니다.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보고는 이내 자기 얼굴을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보는 이유는 자기 얼굴을 가다듬기 위해서인데
가다듬지 않고 거울을 본 것만으로 됐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거울을 봤을 뿐 자기 얼굴을 본 것은 아닌데도,
얼굴을 봤어도 얼굴을 가다듬은 것은 아닌데도.
아무튼 마리아처럼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은 것만으로는 행복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될 때 진정 행복함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