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속에서 한 여인이 말합니다.
그녀의 말은 성모님에 대한 부러움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그녀에게
아쉬움으로 남았던 것 같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
자신의 자녀들은 예수님처럼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여인의 말에 행복하다는 형용사는
단수로 표현됩니다.
단수는 단 한 사람만 가리키며
그 사람만의 절대적 행복을 의도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행복하다는 단어는
복수로 표현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행복은
누구에게만 제한되지 않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또한 성모님의 응답에 앞서
하느님의 선택이 있었던 것과 달리
예수님의 말씀에서의 행복은
하느님의 말씀을 대하는 사람의 의지와
연결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응답이 있기 전에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리고 성모님의 경우
하느님의 부르심은 단 한 사람에 해당하지만
행복에로의 초대는
단 한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기에
각자의 응답이 더 중요하게 보입니다.
즉 여인이 더 이상 성모님을 부러워하거나
스스로에게 아쉬움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행복으로 초대하십니다.
그 초대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나
자신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
초대의 순간입니다.
그 상황에서
'나는 안 돼'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눈을 돌렸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 만이 주실 수 있는 행복
그 영원한 행복을 향해 갈 때
인간적인 부러움과 아쉬움이
크게 남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초대에 기쁘게 응답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에 머물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물 때
참행복은 우리에게서 멀리 있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