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 깨어있는 사람.”
저는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며
어쩌면 오늘 주제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회개가 묵상이 되었습니다.
불행한 사람이란 불행에 주저앉은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란 불행에서 회개한 사람이라고 묵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행복에 깨어있어야 하고
반대로 불행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왜 불행해야 해?
나는 무조건 행복할 거야!
불행하면 나만 손해잖아? 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도 내가 불행하길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께서 시중드신다는 것도
고작 밥상에서 시중드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행복 시중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시중드시는 것이 고작 밥상에서뿐이겠습니까?
엄마만 해도 자식에게 배나 부르라고 밥해주지 않고 행복하라고 해주지 않습니까?
어제도 저는 예약 밥상을 했고 이 밥상을 차리기 위해
지난주 시골에 갔을 때부터 재료 준비하고 정성을 다해 밥상을 차렸는데
만약 어제 드신 분들이 그 정성과 사랑은 느끼지 못하고
그저 음식이 맛이 있네, 없네, 하며 드셨다면 저는 매우 섭섭했을 것이고,
드신 분들은 사랑을 느끼지 못한 것이고 행복에 깨어있지 못한 것이지요.
오늘 독서에 비추어 복음을 읽을 때 우리는 은총에도 깨어있어야 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가 이렇게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불행한 사람은 죄에 머물고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죄에 짓눌려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하려면 죄의식에서 벗어나 은총을 느껴야 합니다.
나의 죄로 향했던 시선을 하느님 은총으로 돌리는 것,
너의 죄로 향했던 시선도 하느님 사랑으로 돌리는 것
내 죄가 큰 것만큼 하느님 용서가 큰 것을 느끼는 것,
이것이 회개이고 은총에 깨어있는 행복입니다.
은총에 깨어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죄에 머물고 죄에 짓눌려있는
불쌍하고 불행한 내가 아닌지 돌아보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