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Identity란 말을 많이 씁니다.
정체성 또는 신원이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자기 정체를 잘 알아야 하고
자기 정체성이 뚜렷하고 확고해야 한다고도 합니다.
프란치스코는 귀도 주교 앞에서 상속권을 아버지에게 돌려주며
이제부터 육신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겠다고 선언한 다음
집을 떠나 어디론가 가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강도가 나타나
누구냐고 물었고 이에 망설임 없이 자기는 위대한 왕의 사신이라고 답합니다.
20대 젊은 나이에 프란치스코는 이미 주님과의 관계에서
이렇게 뚜렷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저는 같은 나이에 신학교에 들어가서도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지 못했었지요.
신학교 첫 수업에 강의실을 잘 찾지 못해 좀 늦게 들어갔더니
칠판에 ‘나는 누구인가?’라고 쓰여있었고 그래서 옆의 친구에게 물으니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10번에 걸쳐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하느님의 자녀다.’ ‘나는 신학생이다.’ ‘나는 누구의 아들이다.’
이런 식으로 10번을 써야 하는데, 저는 10번을 다 김찬선이라고만 썼습니다.
그해 십여 명의 동기생들이 이 응답을 잘못하여 입학하자마자 퇴학당했는데
그 이유가 5번 이내에 나는 신학생이라는 답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퇴학당하지 않은 것은 제가 교구 신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는데
저는 이때 주님과의 관계에서 정체성은 물론 프란치스칸 정체성도 없었고,
정체성의 혼란이랄까, 아무튼,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한 상태로 살았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미성숙이고 어리석음입니까?
그런데 오늘 복음의 주님은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명확히 알려주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종이고 동시에 주님의 집사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는데
개신교 신자들은 서로를 집사라고 부르지요.
형제라는 호칭도 좋지만 주님과의 관계에서
집사라 부르는 것도 상당히 의미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서로 그렇게 부르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주님의 종이요 집사라는 것은 어떤 것도 내가 주인이 아니고,
하느님이 그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이지요.
재물도 나의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것이고,
내 아내도 나의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것이며,
내 아들도 나의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것이고,
내 형제도 나의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것이며,
심지어 나 자신도 나의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것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니 누구도 그리고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나 자신도 내 좋을 대로 하려고 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싫어서 저는 30대 중반까지 주님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도 ‘주님’ 하며 기도하지 않고 ‘하느님’ 하며 기도했습니다.
사제요 수도자인 제가 그렇게 주님의 종이 되고 집사가 되기 싫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자였습니까? 저라는 인간이!
그리고 그렇게 30년 더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 좋을 대로 하고 있으니!
집사 노릇에 충실할 때 행복하다고 오늘 주님은 말씀하시는데
나는 행복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제가 이러면서도 그 행복이 참 행복일까요?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