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오늘 이 말씀은 하느님의 자녀답게 잘 살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여 어제에 이어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어찌 해야 하는지 보렵니다.
오늘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잘 사는 것이란
우리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마태오복음의 소금 얘기와 다릅니다.
마태오복음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마태오복음에서는 우리가 소금이라는 얘긴데
오늘 복음에서는 소금을 마음에 간직하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음에 간직해야 할 소금이란 무엇일까요?
앞의 말씀들과 연관시키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말씀의 바로 앞의 말씀은 이러하지요.
“모두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여기서 소금은 불 소금으로서 죄 지은 사람에게 주어진 벌입니다.
말하자면 책벌責罰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매우 인자하신 분으로,
웬만한 죄는 눈감아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는데
오늘 주님께서는 매우 엄하고 단호한 분으로 말씀하십니다.
죄를 짓게 하는 것이면 손발을 잘라버리고, 눈을 빼버릴 정도로
스스로의 엄격한 잣대로 자기 죄를 벌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불 소금에 절여진다는 말씀입니다.
제 생각에 스스로의 엄격한 잣대를 마음에 지니고
스스로 자기 죄를 벌하는 것이 양심의 가책呵責이라면,
이 양심의 가책이 없어서 죄를 범할 때
하느님께서 가하는 벌이 책벌責罰입니다.
또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 소금이란 하느님의 법입니다.
이 하느님의 법을 자율적自律的으로 실천하면
오늘 주님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법은 우리에게 좋은 것이 되지만
우리가 타율적他律的이면 하느님의 법은 우리에게 싫은 것이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법이 싫어 타율他律이되고 그래서 이 법을 어기면
하느님의 법은 불 소금이 되고 우리에게는 책벌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하느님의 법을 마음에 간직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사람은
이제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됩니다.
그런데 나의 실천이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나의 실천이 독선이 되어 다른 사람의 실천을 판단하는 것이 될 때
나와 그 사람 사이에는 하느님이 아니 계시고 평화도 깨어집니다.
누가 하느님의 법을 실천하지 않을 때
우리는 종종 하느님이 아니라 내가 단죄하고 내가 책벌을 내립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의 말씀은 너 스스로 하느님의 법을 사랑하여 실천하고,
그것이 모범이 되어 다른 사람도 사랑으로 실천하게 하라고 하시고,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 간에 평화를 간직하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법을 실천하는 것을 놓고 싸우지 말라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