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자비하신 분이시며,
그러므로 우리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이웃에게 무자비하면 하느님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무자비한데도 하느님은 사랑이시니 우리에게 자비하시겠습니까?
오늘 탈출기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떤 과부나 고아도 억눌러서는 안 된다.
너희가 그들을 억눌러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들어줄 것이다.
나는 자비하다.”
그러므로 힘없는 이들에게 무자비한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무자비하십니다.
힘없는 이들의 부르짖음을 무시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편애가 아니고,
하느님의 사랑은 정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느님의 사랑은 편애가 아닙니다.
부자만 사랑하시고 가난한 사람은 사랑하지 않으시지 않고,
부자라고 더 사랑하시거나 가난하다고 덜 사랑치 않으시며,
반대로 가난한 사람만 사랑하시고 가난하다고 더 사랑치 않으십니다.
지금도 그런 면이 있지만 전에 저는 부자를 좋지 않게 보고,
가난한 사람은 거의 무조건 편들고 도우려는 면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닮으려는 그런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는 고상한 자기 만족감의 차원이 있었고,
부자들에게는 제가 우위를 점하지 못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을 통해 우위를 점하는 교만 차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필요로 하고
청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자비하시고 그 사랑은 똑같습니다.
다만 가난한 사람은 하느님 사랑을 필요로 하고 청하는 데 비해
부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편이지요.
다음으로 하느님의 사랑은 정의의 사랑입니다.
불의한데도 괜찮다고 하시는 사랑이 아닙니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말씀하신 대로
불의한 사람에게는 불의에서 돌아서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자비이고,
불의에서 돌아서도록 불의에 대해서는 벌을 내리시는 것이 자비인데
그때는 자비하신 하느님도 무자비하십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자비하신 하느님의 무자비입니다.
이것이 또한 무자비하신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이 자비를 제대로 알고 실천하라는 하느님의 계명을 듣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