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라떼라노 대성전 축일인데
건물로서의 대성전의 의미를 기념하기도 하지만
성령의 성전인 우리와 우리 공동체의 의미도 기념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께서도 사람들이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을 얘기하자
당신의 몸인 성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그렇지만 건물로서의 성전이나 나라는 성전이나 공동체라는 성전이
그 안에 하느님께서 계셔야지만 성전이라는 면에서는 공통적입니다.
그렇다면 성전이 무너지는 이유도 다르지 않고 모두 같을 것입니다.
그 안에 계셔야 할 하느님이 아니 계시기 때문입니다.
서양에서 그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이 폭격받거나 사람들이 허물지 않아도
무너지는 것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지 않기에 폐허가 되고 무너진 거지요.
그러니까 그 성전에 하느님이 아니 계시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 성전에서는 더 이상 하느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성전에 하느님이 아니 계시다니 그것이 말이 됩니까?
아니 계신 곳이 없이 어디에나 계시는 하느님이
마땅히 계셔야 할 성전에 오히려 아니 계시다니 말이 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 성전에 하느님이 아니 계신 것은
그 성전에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지 않고,
그 성전에서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코처럼 무너진 성당을 재건하려면
프란치스코처럼 성당을 재건하기도 해야 하지만
성당 재건에 앞서 무너진 인간 성전들을 재건하여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성당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합니다.
사실 성당이든 수도원이든 망하고 무너지는 곳을 보면
그곳에 하느님께서는 아니 계시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끼리 모여 살고,
그러니 자기들끼리 혹 사랑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미워하고 싸움박질만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끼리,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끼리 만나고 모이니,
사랑의 하느님이 자기들 안에 아니 계신 사람끼리 만나고 모이는 셈이요,
그러니 당연히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갈라설 수밖에 없게 되고 망하게 되겠지요.
하느님이 아니 계신 성전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고,
그러니 무너지기 전에 우리 자신을 허물어야 합니다.
그것은 ‘허물어라! 다시 세우겠다.’라고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다시 세우기 위해 우리 자신을 허무는 것이고
이렇게 우리 안에서 잡것들을 싹 허물어버릴 때 오늘 주님처럼
우리도 성전을 정화하는 것이요 세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될 것입니다.
허물고 다시 세우는 이 과감한 작업을 주님과 프란치스코처럼
용감히 수행하라고 촉구받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