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오늘 주님 말씀 중에 세도를 부린다는 말씀이 특별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말씀을 좀 색다르게 이해하기 위해 개신교 성서를 봤다니
“고관들은 그들에게 권세를 부린다.”로 번역을 하였고,
영어 번역을 보니 “They make their authority felt.”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세속 통치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권력을 느끼게 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노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가장 훌륭한 임금은
백성이 자기 임금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없는 듯 있는> 존재라지요.
백성들은 두 가지로 임금을 입에 올립니다.
하나는 임금의 무능으로 살기 힘들 때 원성怨聲이 커지며 입에 올리고,
다른 하나는 포악하게 백성을 못살게 굴어 원성이 커지는 경우입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누가 임금인지도 모른다는 것은
무능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임금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백성이 모두 만족하도록 자기가 해야 할 역할을 다 하는데도
자기가 드러나지 않게 너무도 겸손하고 작은 자로서 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형제들 중에 정말로 이렇게 작은 형제들이 있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듯 조용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것을 모르다가 이 형제가 자리를 비울 때에야 압니다.
집안에서도 식구들이 엄마의 존재를 잘 모릅니다.
매일 밥을 짓지만 밥을 얼마나 힘들게 지은 줄 알아주길 바라지 않고,
반찬을 아주 정성껏 만들지만 맛있다고 말해주길 바라지 않고 만들며,
청소니 빨래를 하더라도 그것을 알아주길 바라지 않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하루라도 엄마가 집을 비우면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고,
그때서야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그러나 얼마나 겸손한지를 압니다.
어머니들은 진정 존재는 작고 겸손하고 사랑은 크고 대단합니다.
어머니들은 참으로 책임과 의무는 크고 권한과 권력은 작습니다.
봉사와 배려는 많이 하시고 자유와 권리는 적게 요구하십니다.
이런 어머니들의 역할을 보면서 한 공동체의 책임자인 저는
그 역할을 잘하고 있고, 다하고 있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제그제는 형제들과 함께 전반기를 돌아보는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공동체를 전체적으로 돌아보기도 하였지만 저를 개인적으로도 돌아봤습니다.
공동체의 책임자인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 역할을 둘 다 해야 하지만
프란치스코의 가르침대로 한다면 어머니 역할을 더 잘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가 이렇게 얘기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자기 육신의 자녀를 기르고 사랑한다면 각자는
자기 영신의 형제들을 한층 더 정성되이 사랑하고 길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버지 역할에 치중하고 어머니 역할은 잘하지 못했습니다.
판단하고, 결정하고, 지시하는 역할을 더 많이 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역할만 그러 했겠습니까?
아버지처럼 바라는 것이 많고 요구하는 것도 많았지요.
해야 할 것을 형제들이 잘하기를 바라고, 다하기를 바랐으며
마음으로 바랄 뿐 아니라 어떤 것은 실제로 요구까지 하였지요.
그리고 제 말이 헛소리가 아니라 권위 있는 말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랐고,
사랑이라도 할라치면 그 쥐 꼬리만한 사랑이 느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렇습니다.
느끼게 하려면 사랑을 느끼게 해야지 힘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되지요.
그러나 사랑도 겸손한 사랑은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사랑입니다.
햇볕도 봄볕은 잘 느끼지 못하고 한 여름 땡볕은 즉시 느낍니다.
왜냐면 오뉴월 땡볕은 폭염暴炎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볕이 폭염暴炎이 되어 느끼게 되면 안 되듯
힘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만일 그것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일종의 폭력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