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오늘 복음에서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청을 들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여러 차원에서 믿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능하신 하느님입니다.
우리의 사도신경 첫마디가 바로 ‘전능하신 천주 성부’이잖습니까?
그리고 사도신경에는 없어도 하느님이 사랑의 하느님이라는 것이 우리 믿음이고,
그밖에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이요 진실하신 하느님이라는 것도 우리 믿음이지요.
그러니 하느님께서 우리의 청을 못 들어주실 리 없으시고,
우리의 청을 아니 들어주실 리도 없습니다.
복음에서 한번은 “하실 수만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라고
했다가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꾸지람을 주님께 듣고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뒤늦게 믿음의 부족을 고백하고 도움을 청한 아비가 있었지요.
그런가 하면 복음 다른 곳에서는 능력의 주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며
고쳐주실 의향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청하는 나병 환자 얘기가 있지요,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때 나병 환자는 아무런 꾸짖음을 듣지 않고 치유를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믿음과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선의를 믿고 청한 다음에는
겸손하게 처분을 기다리고 끝까지 때를 기다리는 자세 말입니다.
제 생각에 재판관에게 줄곧 졸라대어 원하는 것을 이룬다는
과부의 비유는 적절치 않고 엄마의 비유가 적절할 것입니다.
자식을 너무도 사랑하는 엄마가 자식의 올바른 청을 들어주지 않으실 리 없습니다.
그렇지만 엄마가 들어주는 데는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식이 원하는 것이 좋은 것이어야 합니다.
자식이 나쁜 것을 청하면 절대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와 가르침에서 중요한 것은 때입니다.
그러니까 둘째 조건은 때가 맞아야 합니다.
자식은 청하고 즉시 들어주기를 원하지만
엄마는 더 좋은 다른 때를 염두에 둡니다.
자식은 지금 놀겠다고 하지만
엄마는 공부한 다음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청하지만
주님은 그것보다 더 좋은 것과 더 좋을 때를 예비하고 계신다는
그런 믿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있는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