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사람들에게 파멸의 시간이 와도 두려워하거나 속거나 따라가지 말라고 하신
주님께서 오늘은 제자들에게 박해받게 되면 오히려 증거의 기회로 삼으라고 하시고
그 과정에서 인내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고 속거나 따라가지 않는 정도만 되도 되지만
제자들은 그것으론 부족하고 주님의 증거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묵상할 것을 갖습니다.
첫째는 기회와 관련한 묵상거리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기회를 잡지 못하고 놓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기회를 잡더라도 고작 승진이나 출세의 기회나 잡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신자이며 제자인 우리는 다른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처럼 세속적인 기회가 아니라 당연히 영적인 기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편으로는 주님을 증거 하는 기회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기회입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기회란 주님을 위한 것이며
동시에 나를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하나로 묶으면 우리가 증거 하는 것은,
우리가 믿는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게도 많은 사람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없고,
그래서 그들에겐 영원한 생명에 대한 기대도 관념도 없고,
그래서 이 세상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인 삶을 삽니다.
그러니 기회를 잡더라도 세속적인 기회만 잡게 되겠지요.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강한 갈망이 없으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없어도 된다는 얘기가 되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 때문에 박해와 손해라는 기회비용을 치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기회비용이라는 두 번째 묵상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기회비용이란 애초에 경제적인 용어로서
시간, 돈, 능력 등 주어진 자원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인간은 다양한 기회를 모두 선택할 수 없고 그래서
어떤 기회의 선택은 곧 나머지 기회들에 대한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그대로 적용하면
우리가 영원한 생명이나 하느님 나라와 같은 영적으로 큰 가치를 선택게 되면
이 세상의 가치를 포기하고 박해와 손해를 감수하는 기회비용을 치러야겠지요.
그런데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박해를
감수하는 기회비용뿐 아니라 박해를 감당하는 기회비용도 치러야 하는데
감당하는 기회비용을 다른 말로 하면 인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박해를 감수하는 것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감수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수한 것을 감당해야 하기에
다시 말해서 감수한 다음엔 그것을 인내해야 하기에
영원한 생명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인내로서 생명을 얻어라.”라는
중요한 말씀을 오늘 마지막으로 하시는데 이것이
우리가 건너뛰지 말아야 할 세 번째 묵상거리입니다.
사실 박해가 아니더라도 약함과 병고를 인내해야 영원한 생명으로
넘어가게 됨을 나이 먹고 늙어갈수록 무겁게 묵상하는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