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 금요일-2022
오늘 주님께서는 짧은 비유를 드시는데
당신 세대가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 같다고 하십니다.
당신 세대가 아이들처럼 미성숙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떻게 미성숙하냐 하면
자기가 반주해주는 대로 춤추지 않고
장송곡을 연주해도 같이 애도하지 않는다고 서로를 탓합니다.
우리말로 바꾸면 나의 장단에 남이 춤추기를 바라면서
정작 자기는 남의 장단에 춤추지 않는 완전히 자기중심의 미성숙이지요.
그런데 이런 미성숙도 있습니다.
남의 장단에 놀아나고
아무 장단에 춤추는 미성숙입니다.
이런 미성숙도 또 있습니다.
남의 장단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 아예 어느 장단에도 꿈쩍 않는.
이는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못하고 어느 것에도 공감하지 못하며
완전히 자기 안에 갇혀 있는 것이고 혼자 웅크리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세 가지 미성숙이 있습니다.
미성숙 1: 내 장단에 남이 춤추기를 바라는 자기중심의 미성숙.
미성숙 2: 아무 장단에나 놀아나는 줏대 없는 미성숙.
미성숙 3: 어느 장단에도 꿈쩍 않는 경직되고 자폐적인 미성숙.
그러므로 우리가 성숙한 사람이란
나의 장단에 남이 춤추기를 바라지도,
남의 장단에 내가 놀아나지도 않으며,
아무 장단에나 춤추지 않지만,
어느 장단에는 춤추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성숙한 사람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출까요?
사랑의 장단에는 춤을 추고,
신앙적으로는 하느님 장단에는 춤을 춥니다.
자기 사랑,
이웃 사랑,
하느님 사랑에 어긋나는 장단에는 놀아나지 않고,
사랑의 장단에는 어울려서 춤추고 신명 나게 춤을 춥니다.
쓸데없는 말이나 남을 해치거나 흉보는 말은 듣지 않고,
하소연과 도움이나 동감을 얻으려는 말은 귀담아들으며,
하느님의 말씀은 경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사야서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그런데 예수님 당대의 사람들은
요한의 말도 듣지 않고 주님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요한은 굶는다고 비난하고
주님은 먹는다고 비난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거부하면 그 사람의 어떤 말도 거부하기 마련이지요.
반대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면
하느님의 계명을 들을 것이고,
그 사람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 함께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을 이 대림 시기에 귀담아들어야겠습니다.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1코린9장)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로마1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