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022 추천 수 0 댓글 1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하여라.”

주님의 길이란 어떤 길인가요?
서울에서 부산 가는 그런 길인가요?
곧 주님께서 부산 가셔야 하는데 그 길을 제가 닦는다는 뜻일까요?

주님의 길이란 내가 아닌 다른 누구를 찾아가시는 길이 아닙니다.
주님의 길이란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나에게 오시는 그 길입니다.
그것은 마치 내 집 앞 눈 치우기와 같은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 동네에 오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집 앞 눈을 치워 주님을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바로 내 짚 앞까지 오셨는데도
나만 눈을 치우지 않아 오신 주님을 돌려보내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내 집 앞 눈을 치우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주님의 길을 닦는다기보다
어쩌면 나의 길, 주님께서 내게 오시는 나의 길을 트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은둔자였습니다.
나는 나의 집만 있으면 됐습니다.
나의 가족만 안전하게 있으면 됐습니다.
어쩌면 누가 온다는 것은 나의 안락함을 방해하거나
우리 가족의 안전을 파괴하는 침입자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침입자는 물리치거나 막아야 하지
오도록 길을 내줘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니 단절이 선이고 소통은 오히려 악이었습니다.
내 것 잘 지키는 것이 유익이지 나눔은 손해일 뿐이었습니다.
관계없음이 편하고 좋지 관계란 번거로움과 해로움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오실 나의 길을 튼다는 것은
이 고립의 빗장을 풀고 단절의 문을 열고 나가
주님이 오시는 사랑의 길을 까는 것입니다.
주님이 사랑으로 오시니 나도 사랑으로 영접하는 것이고,
침입자가 아니라 구원자로 오시니 그 주님을 기꺼이 맞이하는 겁니다.

두 번째로 주님의 길을 닦는다는 것은
어쩌면 주님께서 내게 오실 전용도로를 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의 길은 주님께서 오시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수없이 왔는지 몰라도 주님께서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의 길에 주님께서 오시는 길도 내는 것입니다.
외국의 귀빈을 모시기 위해
경찰이 다른 차들을 막고 귀빈의 차만 갈 수 있도록 길을 내듯이
고속도로에서 전용차로가 있어 버스에게만 특혜를 주듯이
주님께서 나에게 직통으로 그리고 아무 방해 없이 오시도록
주님 전용도로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길을 닦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나의 길을 포기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자주 My Way를 고집합니다.
내 볼일만 보러 가는 My Way.
내 식대로 하겠다는 My Way.
매우 무도하고 독단적인 이런 나의 길을 포기하고
주님의 길을 따르겠다는 것도 주님의 길을 닦는 것일 겁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
    홈페이지 영희 2011.12.06 09:00:18
    정곡을 찌르는 그 한마디!

    "주님이 오셔야 할 길에 잡O들만 왔다고..."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4Apr

    성주간 수요일- 저는 아니겠지요?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오늘 주님께서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라고 하자 제자들은 모두 “저는 아니겠지요?”하고 묻습니다. 그런데 유다와 다른 제자의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주님”이라고...
    Date2012.04.04 By당쇠 Reply2 Views1024
    Read More
  2. No Image 03Apr

    성주간 화요일- 허무감, 그것은 욕망의 찌꺼기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어제 오늘 계속 주님의 종의 얘깁니다. 주...
    Date2012.04.03 By당쇠 Reply1 Views1099
    Read More
  3. No Image 02Apr

    성주간 월요일- 나는 종인가, 상전이가?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주님의 종의 첫 번째 노래에 첫 번째로 나오는 말입니다. 대단히 선언적인 말씀입니다. 그것도 다른 누가 아니라 주님께서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어디에 강조점을 두느냐에 따라 우리는 더욱 풍성하게 이 말씀을 묵...
    Date2012.04.02 By당쇠 Reply2 Views899
    Read More
  4. No Image 01Apr

    주님 수난 주일-고통은 인생의 숙명이 아니다. 사랑의 순명이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야훼의 종은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
    Date2012.04.01 By당쇠 Reply2 Views928
    Read More
  5. No Image 31Mar

    사순 5주 토요일- 악을 통해서도 선을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 이 말은 대사제 카야파의 말입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이 말을 한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그의 인간...
    Date2012.03.31 By당쇠 Reply3 Views793
    Read More
  6. No Image 30Mar

    사순 5주 금요일- 神신들인 우리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은 신이라고 하였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 이제 예수님은 점점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십니다. 당신을 신이라고 하는 신성모독의 혐의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Date2012.03.30 By당쇠 Reply2 Views759
    Read More
  7. No Image 29Mar

    사순 5주 목요일-믿음,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남을 잘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남을 도무지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보통 그러합니다.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과거에 긍정...
    Date2012.03.29 By당쇠 Reply2 Views798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1070 1071 1072 1073 1074 1075 1076 1077 1078 1079 ... 1347 Next ›
/ 1347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