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촉진자',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3년 12월 20일 수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 1,30-33)
시간 밖의 존재가 시간 안으로 들어온 신비
놀라운 일이로다! 하느님께서 사람 가운데 오시니. 담길 수 없는 분이 태 안에 담기시도다. 시간 밖의 존재가 시간 안으로 들어오시니, 크나큰 신비로다. 씨 없이 잉태되시고, 사람의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이 자신을 낮추시니 그 신비가 참으로 크도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몸소 비우시고 육신을 취하시어 피조물의 모습이 되셨다. 그래서 천사는 동정 마리아께 잉태를 알리며 이렇게 말했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자비의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
-수도승 요한, 탄생 예고 찬미가-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엑카르트의 영성에 영향을 준 신학들
13)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상기시키는 자다:
우리 모두가 왕다운 사람이라면, 그러한 탄생이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도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보다도 상기시키는 자다. 그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되라고 말하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라고 말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그는 자신의 신적인 근원 및 자신의 신적인 운명과 접촉한 창조적이고 자비로운 분이다. 그는 자신이 복을 위한 복이 되었듯이 우리도 그렇게 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일깨우는 귀인이자 왕이다. 모든 사람은 물론이고 “만물”도 우리에게서 이러한 복음을 들어야 한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엑카르트가 말하는 구원을 상기의 모티프로 활용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로마서 12장 2절의 그리스어 본문에는 “변화된다’는 뜻의 말로 씌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일신‘은 의식의 실제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원상태의 회복 곧 아포카타스타시(apocatastasis”를 의미한다. 이것은 심리학이 경험에 의거하여 발견한 사실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말하자면 의식의 시야에서 쉽게 사라지거나, 회심에 의해 조명된 의식이 그리스도라는 인물 속에서 그것을 인식하기 전에는 결코 인식되지 않는, 그러나 항상 존재하는 원형이 있다는 것을 심리학은 발견해 낸 것이다. 이러한 상기(anamnesis)의 결과로 하느님상(像)과 하나가 되는 원상태가 회복된다.“(81)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2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묵시 7-14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 2부 중세 그리스도교
제 3기 : 1050 ∼ 1300년
중세 중기 교회의 전성
제 1절: 클뤼니와 수도원의 개혁운동
클뤼니 수도원은 10∼12세기까지의 빛나는 발전과 완전히 탁월한 영향력을 그 내적인 견고성과 역동성 덕분에 얻게 되었다. 그 수도원의 생활은 분망한 바깥 세상살이에 방해를 받지 않고, 그 울타리 안에서 깊고 올바르게 전개될 수 있었다. 침묵 가운데 지내며 자성하고, 전례생활에 전념하는 수도자들은 서구 공동체의 위대한 기도인들이었다. 기도를 통한 다른 수도원들과의 형제적 단결, 전례의 기본 특정인 전 그리스도교계와의 강한 공동체적 연관은, 개혁 수도원을 모든 이기주의에서 보호하였다. 그 힘은 염세적인 생활의 경시가 아니라 영적 • 정신적 사명,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계를 위한 기도를 조용히 받아들인 데에 근거하고 있었다. 최근의 연구는 클뤼니의 수도자들이 개혁정신의 진지함 중에서도 일종의 세계로의 개방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하였다. 그들은 학문을 장려하였고, 정치적인 발전에 관심을 가졌으며 황제나 국왕들과의 접촉을 계속하였다. 마졸로 수도원장은 오토 1새로부터 큰 신망을 얻었고, 오딜로는 하인리히 2세와 친한 사이였다. 위고는 하인리히 4세의 영세 때 대부를 맡았고, 그후 하인리히와 교황 사이를 중재하였다.
제 2대 수도원장인 오도 시기에 개혁의 확장이 시작되었다. 점점 많은 수도원들이 클뤼니에 병합되거나 정관에 따라 새로 설립되었다. 이리하여 하나의 큰 수도원 연합이 탄생하였고 그것틀은 클뤼니 모(母) 수도원과 긴밀히 결합되었다. 그래서 그곳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영적인 결실을 맺었다. 클뤼니 연합은 11세기에 절정에 이르렀고, 12세기에는 약 3천 개의 공동체들이 그 수도원 연합에 속해 있었다. 그것은 프랑스 • 부르고뉴 • 이탈리아 · 스패인 • 영국으로 보급되었고, 독일에는 개별적으로 보급되었다. 그것은 어디에서나 정신생활에 매우 깊은 영향을 미쳤다. 클뤼니는 서구의 종교적 심장이었다.(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