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마리아께서 당신은 남자를 알지 못한다고 하시는데
저는 즉시 남자는 알지 못해도 하느님은 아는 분이시다는 묵상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남자를 몰라야만 하느님을 안다고 얘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남자만 알고 하느님을 모르는 여자가 있긴 하지만
남자를 몰라야만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남자를 모르는 사람이 하느님을 더 잘 알 수는 있을 거라고.
물론 이것도 모두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다만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남편이 없는 여자와 처녀는 몸으로나 영으로나 거룩해지려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혼인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이와 같이
혼인하는 사람도 잘하는 것이지만 혼인하지 않는 사람은 더 잘하는 것입니다.”
사실 잘 아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람은 사랑이 없이 잘 알 수 없고,
하느님은 더욱더 사랑 없이 잘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하기에 사랑이 갈리지 않았고,
그래서 하느님의 어머니 되기에 온전히 합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성모 무염시태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합당한 거처가 되도록 미리 축성하신 것 말입니다.
사랑이 우리에게도 오십니다.
사랑의 거처가 됩시다.
우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