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촉진자',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3년 12월 21일 목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3-45)
믿음의 열매인 그리스도
보다시피 마리아는 의심하지 않고 믿었기에 믿음의 열매를 얻었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그러나 귀로 듣고 믿는 여러분도 복된 사람들입니다. 믿는 영혼들은 하느님 말씀을 잉태했고 그것을 모시며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영혼이 여러분 각자 안에 들어와 주님을 찬양하게 합시다. 마리아의 영이 여러분 각자 안에 들어와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게(루카 1,46-47 참조) 합시다. 육으로는 그분께서 그리스
도의 유일한 어머니시지만, 그리스도는 모든 믿음의 열매십니다. 악행으로 더러워지지 않고 때묻지 않은 영혼이 하느님 말씀을 모시면, 말씀께서 당신의 정숙함으로 그 영혼의 모든 순결함을 지켜 주십니다.
-암브로시우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엑카르트의 영성에 영향을 준 신학들
14) 웃음 · 새로움 · 기쁨:
엑카르트에게, 하느님은 영원히 새롭고, 영원히 젊은 분이다. 예수가 세상을 떠날 때, 파송된 하느님의 영을 받는 것은 곧 새로움과 젊음이라는 선물에 우리 미·음을 활짝 여는 것이다. 버림은 기쁨을 그대로 놓아두는 것을 의미한다. 신적인 기쁨은 우주를 끊임없이 창조하고, 우주를 늘 기쁘고 새로운 근원, 곧 참된 안식이 자리한 곳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자비 역시 우리의 으뜸가는 근원이다. 만물은 자비 속에서 태어났고, 자비에서 비롯되었다, 즐거움은 영적인 경험에 꼭 필요한 요소다. 우리는 즐거움을 피할 것이 아니라, 즐거움 속으로 뛰어들어 거기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즐거움을 함께 나누려고 애써야 한다. 웃음 역시 버림과 그대로 둠의 궁극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 웃음은 신적인 우주의 음악이다. 왜냐하면 삼위일체의 핵에서는 웃음과 낳음이 종일 계속되기 때문이다. 엑카르트는 경고한다: 소위 영적인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그가 말하는 영성의 중심에 기쁨이 자리하고 있지 않다면, 그런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81)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2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묵시 7-14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목요일 성모님의 날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와 목동 / 세 바르따스>
제 4장
오직 고통뿐
집요한 질문 공세
그곳에서 돌담과 무성한 울타리를 이용하여 밤나무 그늘에 숨어서 루치아, 히야친타, 프란치스코는 성가시게 모여드는 사람들을 피해 기도를 하기도 하고 또 고바 다 이리아에서 귀부인께 받은 신버스런 은혜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였다.
그들은 마을에서 왜 떨어져 있는 또 하나의 은신처도 이용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카베소의 경사지에 있는 작은 동굴이었다. 그곳은 떡갈나무와 올리브나무의 숲으로 완전히 덮여 있었다. 그들은 가끔 이곳에 숨어서 하느님만이 아시는 열심으로 귀부인의 지향을 따라 기도했다.
그들은 귀찮게 덤버며 질문하는 사람들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럴 염려도 없어 안심한 채 마음껏 로사리오의 구슬을 넘기면서 “천사의 기도”도 드릴 수가 있었다. 따라서 몇 시간이라도 지치지 않았으며 피로가 덮칠 때에야 비로소 그곳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고요한 곳에서 발현자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이 지시한 그들의 사명을 완전히 이행할 수 있도록 서로 힘을 북돋았다.
그러나 그들이 항상 방문객들을 피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방문객들에게 몇백 번이고 대답했다. 그들의 진술은 속기되었고 그들은 가끔 사진기 앞에 서기도 했다. 그러니 이제 몇 번이고 몇 차례고 말한 것을 이 이상 더 거듭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떤 조사원, 그 가운데서도 특히 성직자들은 루치아네 집이나 목장에서 소녀를 들볶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소녀를 파티마의 사제관에 불러 더 자유롭게 질문하여 그 대답을 기록하기도 했다.
질문은 어떤 때 너무 지나쳤고 간교한 말로 덫을 던지기도 하였으며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일에까지 마치기도 하여 겨우 열 한 살 난 루치아는 이런 것에 일일이 대답해야 하는가 하고 얼떨떨해하였다.
그 중에는 아이들이 조사받기를 피한다고 헐뜯는 자도 있었으나 그것은 온당치 못하다. 더구나 예의가 없다느니 버릇이 없다느니 하고 책망하는 따위는 당치 않은 것이다. 그들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쾌히 대답했고 질문에도 잘 응했던 것이다.
아이들을 종종 귀찮게 하면서 자질구레한 질문을 했던 모씨가 몬테로 자작이라는 가명을 빌어 공개한 조사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소녀는 내 옆에 앉으라는 말에 의자에 앉았다. 어떻든 간에 이 소녀가 이번 사건의 첫째 목격자이기에 질문을 시작했는데 아주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이 소녀가 끊임없는 방문과 여러 번 거듭거듭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질문에 가련할 정도로 지쳐 있고 험이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기가 저술한 책에서 몇 번이고 발현을 보게 된 세 아이들의 온순한 성질과 정직한 정신을 강조하며 칭찬하고 있다.
루치아는 두 사촌보다 질문 공세들을 통해 주님께 바철 수 있는 공로와 희생이 많았는데 이 고행은 미리 귀부인께서 말씀해 주신 것 중의 하나로서 이것이 바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용감하게 감수해야 할 희생이요 고행이었다.(130)